北, 웜비어 혹 떼려다 붙인 꼴… ‘메구미 사건’처럼 생떼 가능성

입력 2017-06-21 05:00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19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정보기술업계 최고경영자(CEO) 간담회에서 북한에 장기간 억류됐다 혼수상태로 송환된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듣고 "북한 정권의 잔혹성을 규탄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의 왼쪽은 팀 쿡 애플 CEO, 오른쪽은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CEO다. AP뉴시스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가 석방 직후 숨지면서 북한은 국제사회의 거센 비난에 직면했다. 북한 나름대로 미국에 내민 유화 제스처였으나 결과적으로 미국인들의 대북 인식만 더욱 나빠지고 말았다. 그럼에도 북한은 웜비어 사망에 대한 진상규명 요구를 일축하고 도리어 미국 정부를 비난하는 ‘적반하장’ 행태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일본인 납북자 문제 때문에 북·일 관계 정상화 논의를 좌초시킨 전철을 되풀이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2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납북자 문제를 인정하고 사과 의사를 밝혔다. 북한은 회담 직후 생존 납북자 5명을 일본으로 돌려보냈다.

하지만 양측은 사망 납북자 문제를 두고 충돌했다. 북한은 납북자 중 사망자가 8명이 있다고 인정하고 2004년 요코다 메구미와 마쓰키 가오루의 유골을 송환했다. 나머지 6구는 호우로 유실됐다고만 밝혔다. 하지만 일본 측이 송환된 유골의 DNA를 조사해보니 다른 사람의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일본 정부는 “북한 측 주장을 신뢰할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면서 납북자 문제 해결 없이 북·일 수교는 없다는 입장을 지금까지 고수하고 있다. 북한 역시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내란 말이냐”고 맞서면서 북·일 관계 정상화 논의는 15년째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전례로 미뤄볼 때 북한이 웜비어 사망과 관련해 전향적인 자세를 보일 가능성은 극히 낮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20일 “일단 사람이 죽었으니 북한도 이런 부분에서는 애도를 표할 것”이라면서도 “동시에 미국이 웜비어 사망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을 병행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북한 입장에서 돌파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아직 북한에 미국인 억류자가 3명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남은 억류자 3명을 귀국시켜야 하는 미국 정부로서는 북·미 대화를 완전히 단절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불량정권’이라는 인식이 강화되긴 했지만 이런 정권을 방치해서도 안 되기 때문에 대화가 필요하다는 흐름도 있다”면서 “미국 역시 인질을 구출하는 등의 포괄적 협상 계기를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북한이 다른 인질을 석방하고 대화의 계기로 활용할지는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 역시 아직은 예측하기 어렵다”고 부연했다.

북한의 향후 대남 전략도 아직 불투명하다. 일단 북한은 문재인 대통령이 웜비어 유족에게 조전을 보낸 것을 두고 ‘남측이 북·미 간 사안에 끼어들었다’고 비판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면서도 북·미 관계가 여의치 않을 경우 돌연 대남 유화 공세를 취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