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이 노사 공동으로 금액을 절반씩 부담해 5000억원 규모의 일자리 기금을 만들자고 현대자동차그룹에 제안했다. 하지만 노조가 내겠다는 2500억원의 재원은 회사로부터 받지 못한 수당으로 재판에서 대부분 지급 이유가 없다며 사실상 패소한 돈이다. 이 때문에 돈을 받지 못할 것으로 판단한 노조가 새 정부의 일자리정책 기조를 등에 업은 ‘생색내기’식 여론전으로 전략을 바꿨다는 비판이 나온다.
금속노조는 20일 서울 중구 금속노조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현대차그룹에 일자리연대기금(가칭) 조성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 계열사 17곳 정규직 근로자의 미지급 통상임금에서 2500억원을 낼 테니 회사가 같은 금액을 보태 5000억원 규모의 기금을 만들자는 내용이다.
금속노조는 현대차그룹 계열사 조합원 9만3627명이 받지 못한 연월차·시간외수당 등 임금채권이 1인당 2100만∼6600만원이라고 주장한다. 가장 적은 2100만원을 적용해도 전체 임금채권이 2조원에 이른다.
제안에는 매년 200억원씩 추가로 기금을 적립하자는 내용도 담겼다. 노조가 매년 임금·단체협상 타결로 발생하는 임금 인상분에서 일부를 갹출하는 방식으로 100억원을 마련할 테니 역시 회사가 같은 금액을 내라는 내용이다. 금속노조는 기금 5000억원이 마련되면 연봉 4000만원을 받는 정규직 1만2000명을 고용할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매년 적립되는 200억원으로는 1500명씩 늘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대차그룹은 터무니없는 제안이라는 반응이다. 현대차그룹은 노조가 부담하겠다는 기금이 실체가 없다고 봤다. 현대차 측은 “통상임금 소송에서 모든 그룹사 노조가 승소하고 요구한 금액 전부가 받아들여졌을 때에만 받을 수 있는 가상의 돈”이라며 “더욱이 현대차 노조는 현재 2심까지 패소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노조원 23명을 대표로 상여금과 휴가비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달라며 소송을 제기한 현대차 노조는 2015년 1, 2심에서 조합원 비중이 낮은 정비직 2명의 통상임금만 인정받았다. 사실상 패소한 셈이다. 기아차 등 다른 계열사는 통상임금 소송이 아직 진행 중이라 회사가 근로자에게 지급해야 할 돈은 없는 셈이다.
설령 노조가 승소하더라도 기금을 갹출하려면 조합원 전원의 동의가 필요하다. 노조 집행부나 상급단체가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없는 부분이다. 기아차 노조는 올해 임금 요구안을 확정하는 임시 대의원대회에서 반대 여론 때문에 일자리 기금 마련 방안을 제외한 바 있다. 현대·기아차 노조는 그동안 회사가 사회공헌기금을 조성할 때 기여한 전례도 없다.
상급단체인 금속노조가 실현 가능성이 낮은 제안을 공개적으로 발표한 것은 새 정부 들어 일자리 문제가 이슈로 부상한 상황을 지렛대 삼아 현대차를 압박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금속노조의 공개 제안은 ‘양보’를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현대차그룹 측에 모든 부담을 전가하는 ‘책임 덧씌우기’로 귀결된다. 회사는 제안을 수용하면 소송 중인 수당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는 꼴이 되고, 거부하면 사회적 지탄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재계 관계자는 “노사가 함께 일자리 기금을 만든다면야 좋겠지만 통상임금 문제는 회사마다 사정이 달라 개별교섭을 해야 하는 사안”이라며 “따져봐야 할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금속노조 제안 ‘일자리기금 재원’은 패소한 돈
입력 2017-06-20 18:01 수정 2017-06-20 2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