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웜비어 죽음으로 재확인된 김정은 정권의 잔학성

입력 2017-06-20 17:26
북한에 18개월간 억류됐다가 혼수상태로 풀려난 22살의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가 19일(현지시간) 결국 숨졌다. 송환 6일 만이다. 웜비어의 가족들은 사망 사실을 알리며 “그가 북한에서 끔찍한 고문과 같은 학대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북한 정권의 잔혹성을 규탄한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도 웜비어 가족에게 조전을 보내고 “북한이 인류 보편적 규범과 가치인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대단히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앞서 웜비어는 지난해 1월 북한에 여행을 갔다가 평양의 한 호텔에서 정치선전물을 훔치려 한 혐의로 체포돼 체제전복 혐의로 노동교화형 15년을 선고받았다.

김정은 정권은 무슨 짓을 했기에 멀쩡했던 20대 청년 웜비어가 죽음에 이르게 됐는지 스스로 밝혀야 한다. 북한은 석방하면서 그가 식중독 증세인 ‘보툴리누스 중독증’을 보이다가 수면제를 복용한 후 혼수상태에 빠졌다고 주장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이는 거의 없다. 북한이 제대로 된 해명을 내놓지 않는다면 유엔 인권이사회 등이 조사를 벌이는 방법도 국제사회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차제에 북한의 ‘인질외교’도 뿌리 뽑아야 한다. 북한 당국은 북한 땅에 들어온 미국인을 인질로 잡아 미 정부와 관계를 개선하는 도구로 이용해 왔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북·미 관계를 더 악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미국 내에서는 자국민에게 말도 안 되는 혐의를 씌워 장기 억류하고 끝내 사망케 한 북한 당국에 대한 응징론이 일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핵, 미사일 개발 저지와 함께 북한 인권도 본격적으로 문제 삼을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우리 정부도 북한 인권문제에 적극 나서야 한다. 그간 한국 진보정권은 북한 인권상황을 애써 외면하거나 등한시했다는 따가운 시선을 받아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웜비어 사망 사건은 남북관계를 복원하는 것과는 별개로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과 직결된 사안이다. 김정은 정권의 잔학성과 폭력성을 전 세계에 알리고 개선시키는 데 문재인정부가 발 벗고 나서야 하는 이유다. 내주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 인권문제를 협의하고 공동대처 방안을 내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