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구 정지 앞둔 고리 원전 1호기 가보니… 빨간색 버튼 누르자 출력 ‘0’ 발전 기능 멈췄다

입력 2017-06-18 19:28 수정 2017-06-18 21:28
영구 정지를 앞둔 17일 부산 기장군 고리원자력본부 고리 1호기 주제어실 상단 원자로제어반 발전기 출력 부분이 0㎿e를 나타내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 관계자들이 40년 만에 발전 기능을 멈춘 고리 1호기의 상황판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17일 새벽 1시 고리원자력발전소 1호기 주제어실 전광판에 ‘603’이라고 적혀 있던 붉은 숫자가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17시간 뒤 숫자는 60이 됐다.

이때 사람들의 시선이 한 남성에게 쏠렸다. 매뉴얼에 따라 담당 업무를 맡은 이 남성은 벽면을 가득 메운 상황판과 모니터 아래 도열한 수많은 버튼 중 빨간색 버튼을 꾹 눌렀다. 순간 숫자는 ‘0’이 됐다.

40년간 쉼 없이 돌아가며 전기를 생산하던 고리 1호기가 17일 오후 6시 발전기능을 멈추는 순간이었다.

생을 마감하기 직전에 찾은 지난 16일 고리 1호기는 여느 때와 다름없었다. 터빈건물 안은 고온·고압의 수증기를 전기로 만드는 터빈과 주급수 펌프, 급수가열기가 굉음을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3층 주제어실 상황판의 “16일 오후 2시34분 현재 원자로 출력 99.2%, 발전기 출력 603㎿e”는 고리 1호기가 온전히 작동하고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제어봉의 현재 상황을 알려주는 초록색 막대그래프도 선명했다. 세월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원전 상태도 양호했다.

하지만 예정된 시간은 다가왔다. 출력을 낮추고 전력생산을 줄이면서 평소 600∼610㎿e를 오가던 고리 1호기의 발전기 출력은 시간당 5%씩 감소했고 터빈정지 버튼을 누르자 ‘0’이 됐다. 이어 29개의 제어봉이 원자로 다발 쪽으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주제어실의 제어봉 관리 모니터 속 초록색 그래프도 같이 하강했다. 1시간 뒤 제어봉이 121개 원자로 다발 사이로 들어갔다. 제어봉은 원자로 내에서 핵분열을 제어하는 막대기 형태의 물질이며 붕소나 카드뮴 등으로 만든다.

이후 작업은 냉각제를 투입해 300도에 달하던 원자로의 온도를 내리는 것이다. 93도 이하가 됐을 때 원전은 영구 정지된다. 1978년 첫 상업운전을 시작한 고리 1호기는 18일 24시 40년 만에 생을 마감했다.

고리 1호기와 동고동락해 온 지역주민들은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30여년간 이 지역에서 식당을 운영해 온 A씨는 “시원섭섭하다”며 “정치적 이슈로 가동을 멈춘다는 것은 아쉽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마냥 아쉬워만 할 수는 없다. 고리 1호기가 남겨놓은 과제가 많아서다. 일단 4만여평의 부지 활용 여부를 고민해야 한다. 해체 후 부지의 잔류 방사능을 측정하고 평가하는 ‘환경복원’에만 2년이 걸린다. 사용처도 정해지지 않았다. 공원용이나 공장용, 둘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정부가 ‘탈원전’을 선언한 만큼 전력 수급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고리 1호기 발전량은 원전 전체의 2.9%, 전체 전력 발전량의 0.9% 수준이다. 하지만 2023년부터 2029년까지 고리 2∼4호기(2023∼2025년), 한빛 1∼2호기(2025∼2026년), 한울 1∼2호기(2027∼2028년), 월성 2∼4호기(2026∼2029년) 등 총 10기의 설계 수명이 끝난다.

인근 주민들의 불안감도 해소해야 한다. 한 주민은 “오히려 원전이 가동할 때는 안전성을 점검해 안도할 수 있었는데 가동을 중단하면 관리가 소홀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기장(부산)=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