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타이밍도 방법도 우려되는 문 특보 발언

입력 2017-06-18 19:04
오는 29일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나온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의 발언은 걱정스럽다. 이번 발언은 문 특보 개인의 생각이 아니라 대북 대화의 조건에 대한 문재인정부의 구상을 민간단체 세미나에서 우회적으로 밝힌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6·15 기념식에서 조건 없는 대화를 언급한 것과 맥락이 같기 때문이다.

지금 국제사회는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대응해 강도 높은 제재를 진행 중이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과 어떻게 대화를 시작할지를 논의하는 것이 우선일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은 중국을 통한 압박으로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을 억제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압박과 대화 병행’ 속에 궁극적으로는 대화로 해결하겠다는 원칙이 세워졌지만 미국은 더 강한 압박을 강조하는 중이다. 혼수상태로 돌아온 대학생 오토 웜비어 사건으로 여론도 강경하다. 우리로서는 굳건한 한·미동맹에 기초한 국제공조를 강조해야 할 때인 것이다. 같은 민족인데 말이 안 통하겠느냐는 생각은 핵 개발에 모든 것을 건 북한에 빈틈만 보여줄 뿐이다.

미국과 대북정책을 조율하는 방법도 문제다. 미국은 북한이 핵을 개발하지 않겠다는 말만으로는 대화에 나설 생각이 없는 게 분명하다. 북한은 2008년 6월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영변 핵발전소 냉각탑을 폭파했지만 다시 핵 개발에 나섰다. 협상으로 돈만 챙기는 나쁜 버릇을 이번 기회에 바로잡겠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다. 그런데 문 특보는 ‘북한의 추가도발 중단’만으로 대화에 나설 수 있다고 했다. 북한과의 대화에 한국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다양한 채널을 동원해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건 기본이다. 정상회담을 열흘 남겨두고 세미나에서 툭 던져볼 사안이 아니다. 결국 청와대는 문 특보의 발언이 정부기조와 맞지 않는다고 밝혔고, 문 특보도 “문 대통령이 대선과정에서 언급했던 부분을 표현한 것”이라고 발을 뺐다. 야당이 ‘실익 없는 촉새 외교’라고 비난하는 이유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이 풀어야 할 과제가 하나둘이 아니다. 치밀하게 준비하고 정교하게 가다듬어야 한다. 국민을 놀라게 할 성과만 찾는다면 부담만 안고 끝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