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 의혹 제기된 게) 20건이라니 이 정도일 줄은…. 끔찍합니다.”
국민일보가 표절 의혹을 잇달아 제기했던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박모 교수가 결국 지난 17일 학교 측에 사의를 표명했다. 국민일보 첫 보도로 이슈화된 지 4개월여 만이다.
18일 서울대 국문과 안팎 학계 관계자들은 연구 비리 의혹 정도가 심한 데 혀를 내둘렀다. “다른 학문 분야도 그렇지만 특히나 글쓰기 윤리가 생명인 국문과에서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졌어요.” 지난 14일 국어국문학과 전체 교수 회의에서 쓰라림을 삼키며 동료 교수에게 사직을 권고한 건 “(이런 교수에게) 더 이상 교육을 맡길 수 없다”는 판단이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박 교수의 표절 의혹 논란은 그가 2005년 국제비교한국학회가 발간하는 학술지 ‘비교한국학’에 실은 논문을 10년이나 더 지나 스스로 표절이라고 자진 철회한 희한한 사건이 학과에 알려지며 표면화됐다. 박 교수는 이 논문 뿐 아니라 같은 학술지에 실은 2007년 논문 역시 적절한 표시 없이 다른 연구자의 논문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지는 등 제2, 3의 표절 의혹이 제기됐음을 국민일보는 처음 보도했다(국민일보 2월 9일자 ‘표절 면죄부 3년 징계 시효 논란’ 참조).
국민일보는 계속 파헤쳐 박 교수가 각각 2004년, 2008년 한국현대문학회의 ‘한국현대문학연구’에 실은 논문 2편을 비롯해 2015년 ‘비교한국학’에 쓴 최신 논문에 대해서도 표절이 의심된다는 기사를 후속 보도했다(3월 17일자 ‘표절 3년 징계 시효 논란 빚은 서울대 교수 2015년 논문도 표절 의혹’ 참조).
박 교수는 본보의 새로운 표절 의혹 제기에 ‘정정 보도 청구’ 내용증명을 보내와 겁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언론이 비리의혹의 둑에 뚫은 작은 구멍의 힘은 거셌다. 국민일보 보도가 기폭제가 돼 서울대 국문과에서는 학과장 산하 박 교수 문제 조사위원회가 구성됐다. 연구 비리 제보 접수가 시작됐고 새로운 의혹이 고구마 줄기처럼 캐졌다. 또 한국현대문학회는 본보가 의혹을 제기한 박 교수의 해당 논문 2편에 대해 표절이라고 판정하고 지난 1일 서울대 국문과에 통보해 왔다. 동료 교수들이 사직 권고 용단을 내리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박 교수의 사표는 수리될 것인가. 공은 서울대 당국에 넘어갔다. 서울대 교무처는 “규정에 따르면 연구진실성위원회에서 조사가 진행 중일 경우 조사 결과를 공식적으로 발표하기 전까지 인사 처리를 미룰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표절 의혹으로 연구진실성위원회에 제소된 박 교수의 논문은 20편에 달한다.
동료 교수들 입장에서야 14년간 한솥밥을 먹은 인간적 정리상 사직 선에서 마무리할 것을 희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개인의 도덕성 문제를 넘어 표절 문제를 심각하게 보지 않는 우리 사회의 인식과 이 때문에 적당히 넘어가는 시스템의 문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엄정한 판단과 이에 걸맞은 징계가 필요한 이유다. 청문회 때마다 입각 내정자들의 되풀이되는 표절 비리를 언제까지 지켜볼 것인가.
손영옥 문화부 기자 yosohn@kmib.co.kr
[현장기자-손영옥] ‘서울대 교수 표절’ 첫 보도 이후를 지켜보며…
입력 2017-06-19 00:00 수정 2017-06-20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