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한 대기업 채용공고를 본 취업준비생 임모(26)씨는 가슴이 답답했다. 채용공고만으로는 채용인원을 알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임씨는 “‘OO명 채용’이면 채용인원이 10명일 수도 99명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며 “취업이 간절한 구직자 입장에서는 10명 채용과 99명 채용은 전혀 다른 것 아니냐”고 말했다.
신입사원 채용시즌 때마다 구직자는 서럽다. 가뜩이나 취업도 어려운데 기업이 내놓는 정보는 터무니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몇 명을 뽑는지 어떤 직무를 맡는지 안 나와 있다. ‘OO명’ ‘약간 명’ ‘영업’ 등으로 쓰여 있을 뿐이다. 지원한 부서가 아닌 곳으로 배치되는 경우도 있다. 임씨는 “연구개발직으로 입사했는데 반강제적으로 엔지니어직으로 변경된 지인도 있다”고 말했다.
취업에 성공했다면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입사에 실패한 이들은 어떤 점이 부족해서 떨어졌는지 몰라 막막하기만 하다. 실제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올해 상반기 취업에 성공하지 못한 신입직 구직자 589명을 대상으로 ‘스스로가 생각하는 취업 실패 요인’에 대해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12.6%가 ‘기업정보 등 취업을 위한 정보 부족’을 취업 실패의 원인으로 꼽았다. 구직자의 ‘알권리’를 보장하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기업도 항변한다. 기업이 구직자에게 상세하게 정보를 제공할 법적 의무는 없다는 것이다. 한 대기업 인사담당자는 “구체적으로 정보를 제공 안 해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안다”며 “채용설명회에 온 사람들에게만 제한적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또 그는 “돈을 주고 사람을 뽑는 기업에 채용의 자유가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일각에서는 이런 기업의 행태가 이율배반적이라고 지적한다. 기업이 구직자에게는 업무와 크게 상관없는 ‘민감한’ 정보를 내놓게 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김모(25)씨는 지난 5월 서류전형, 면접, 건강검진까지 모두 통과한 회사로부터 최종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기업 측 요구로 여권번호, 부모님 직업, 거주 형태, 추천인 등 민감한 정보를 제출한 상태였다. 탈락한 이유를 묻는 김씨에게 해당 기업은 “재심사해 보니 합격 점수에 못 미쳤다”고 짤막하게 통보했다. 김씨는 억울했다. 정작 자신은 모든 정보를 제출했지만 기업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재발의했다. 법률안은 채용대상 업무, 임금, 채용 예상 인원 등을 채용공고에 명시하도록 하며 채용 여부에 관한 고지를 할 때 채용단계별 불합격 사유도 함께 고지하도록 한다. 또 업무와 관련 없는 정보는 요구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이 법률안은 국회 환경노동위에서 계류 중인 상태다.
손한민 청년소사이어티 대표는 “채용인원은 ‘OO명’으로 하고 인재상도 구체적이지 않고 글로벌 인재, 열정적 인재 이런 추상적 표현이 대부분”이라며 “그러면서 구직자들에게는 굳이 이런 정보까지 알려야 하나 싶을 정도로 요구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박경서 서울지방고용노동청 노무사는 “취준생들이 부족한 정보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며 “하지만 기업의 경영자율을 침해하지 않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밝혔다.
글=손재호 최예슬 기자 sayho@kmib.co.kr, 일러스트=전진이 기자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채용인원 ○○명… “구직자 알권리 침해” “기업에 채용 자유”
입력 2017-06-19 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