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인 “사드 문제로 韓·美동맹 깨진다면 그게 동맹이냐”

입력 2017-06-19 05:00

열흘 후로 다가온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과 미국 간 마찰이 불가피해 보인다. 북핵 해법을 둘러싼 양측 이견이 갈수록 도드라지고 있다. 갈등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 배치와 남북대화의 조건을 둘러싼 이견에 그치지 않는다. 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과 핵잠수함, 전략폭격기 등 이른바 전략자산의 배치와 한·미 연합훈련의 규모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가장 첨예한 갈등은 사드다. 청와대가 환경영향평가와 국회 동의 절차 등을 이유로 사드의 추가 배치를 연기하자 미국은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미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한국과 긴밀히 협력하겠다”고 했지만 미 의회나 언론, 전문가들의 반응은 거칠다. ‘한국이 중국 눈치를 보느라 사드 배치를 미루고 있다’는 시각을 숨기지 않는다. 아예 ‘사드에 환경영향평가를 적용하지 말라’고 주문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이에 문정인(사진) 통일외교안보특보는 16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한국특파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작심발언을 했다. 문 특보는 “사드가 마치 한·미동맹의 전부인 것처럼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사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한·미동맹이 깨진다면 그게 동맹이냐”고 반문했다.

‘남북대화 조건’에서도 이견이 감지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6·15 남북정상회담 17주년 연설에서 “북한이 핵과 미사일의 추가 도발을 중단한다면 조건 없이 대화하겠다”고 밝혔지만 미국은 “비핵화가 우선”이라고 제동을 걸었다. 헤더 노어트 국무부 대변인은 15일 정례 브리핑에서 ‘문 대통령의 제안을 지지하느냐’는 질문에 “우리의 입장은 바뀐 게 없다. 북한과 대화하려면 먼저 비핵화가 돼야 한다”며 “미국이 대화에 관여하기 위한 어떤 행동도 북한은 보여주지 않고 있다”고 답변했다.

이에 문 특보는 “남북대화 조건이 북미대화 조건과 같을 필요는 없다”고 반박했다. 미국의 동의나 북미대화 재개 여부와 상관없이 남북대화가 추진될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그는 “비핵화하지 않으면 대화를 안 한다는 걸 우리가 수용할 수는 없다”며 “북한이 도발하지 않으면 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도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를 데려오려고 북한과 대화하지 않았느냐”며 “비핵화를 이루려면 핵 동결에서 출발해 검증 가능한 폐기로 가야 하고 그 과정에서 대화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다만 “우리가 남북대화를 해도 미국과 충분히 협의할 것이므로 미국이 놀랄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특보는 또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해 미국의 전략자산 배치와 한·미 연합훈련의 축소를 미국과 상의하겠다고 밝혔다. 박근혜정부 이전 한·미 연합훈련에서는 B1B 등 미국의 전략폭격기 등이 배치되지 않았는데 최근 5년 사이 전략자산이 과도하게 배치돼 북한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문 특보는 핵 항모의 동해 배치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앨리샤 에드워즈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국 대변인은 “한·미 연합훈련 축소 등은 문 특보의 개인 의견일 뿐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닐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미국의 소리(VOA) 방송이 17일 보도했다.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국 고위 인사가 워싱턴에서 미국을 자극하는 발언을 내놓은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문 특보의 발언이 주목을 끌고 있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문 특보가 총대를 메고 ‘나쁜 경찰(bad cop)’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것 같다는 시각이 많다. 미국이 싫어할 만한 말을 미리 해둠으로써 문 대통령의 방미 부담을 완화하려 한다는 분석이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