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자에게 룸살롱·골프 접대를 받아온 부장판사가 별다른 징계 없이 사직한 뒤 변호사로 개업해 논란이 일고 있다. 대법원장 직속 법원행정처는 검찰에서 해당 판사의 비위 정황이 담긴 참고사항 문건까지 전달받았지만 엄중경고하는 수준에 그쳤다. 이번 사건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한 사법 개혁이 법원에까지 확산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15일 대법원과 대검찰청에 따르면 대검은 2015년 8월 부산고법 소속이던 문모(48) 부장판사(지법 부장판사급)와 관련한 ‘부산지검 수사 관련 사항’ 문건을 법원행정처에 전달했다. 앞서 부산지검은 조현오(62) 전 경찰청장의 뇌물수수 혐의를 수사하던 중 조 전 청장과 호형호제하던 건설업자 정모(53)씨가 문 부장판사와 유착된 정황을 파악했다. 전달된 문건에는 문 부장판사가 정씨로부터 수년간 15차례 골프 접대를 받고 함께 룸살롱을 출입한 사실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문건에는 문 부장판사가 같은 해 5월 부산지검의 정씨 체포를 전후해 수십 차례 통화하고, 체포 직전 정씨와 정씨 변호인과 함께 룸살롱에 가 접대를 받았다는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체포된 정씨에 대한 구속영장은 2차례 법원에서 혐의 소명 부족 등 이유로 기각됐다. 검찰은 정씨와 조 전 청장을 불구속하며 문 부장판사에 대한 문건을 작성, 대검을 통해 법원행정처에 전달했다.
문건은 대법원 윤리감사관실에 정식으로 접수된 공문은 아니었고, 수·발신인이 기재되지 않은 비공식 형태였다. 이를 건네받은 이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었다. 법원행정처는 윤감실을 포함해 내부 논의를 거쳐 문 부장판사를 엄중경고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법관징계법에 따른 정직·감봉·견책 등 3종류의 징계처분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었다. 확인된 사실관계에 비춰볼 때에는 경고 조치가 적정하다 판단했다는 것이다.
문건을 건네받은 다음 달인 2015년 9월 박병대 당시 법원행정처장이 윤인태 당시 부산고법원장에게 엄중경고 조치를 전달했다. 대법원은 이때 양승태 대법원장은 문 부장판사의 비위 정황이나 엄중경고 결정 과정을 보고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정씨와 조 전 청장은 지난해 2월 부산지법에서 뇌물 관련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지난 2월 부산고법 2심에서는 유죄가 선고됐다. 징계를 받지 않은 문 부장판사는 지난 1월 정기인사에 맞춰 법원을 떠났고, 오래도록 법관으로 재직한 부산에서 변호사로 개업했다. 그가 새로 속한 법무법인은 룸살롱에 동석했던 변호사가 대표로 있다. 문 부장판사에게 엄중경고를 전달하라 지시받은 윤 법원장도 지난 2월 퇴임 뒤 이 법무법인에 합류했다.
문 부장판사는 변호사로 전직한 뒤 최근 지역 언론에 출연해 “아무리 밤을 새워 기록을 보고 재판을 열심히 해도 양쪽 당사자를 함께 만족시키기가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법원을 떠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판사의 한계를 알게 됐고, 더 늦기 전에 한쪽 당사자에게라도 만족을 줄 길을 찾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피의자와 룸살롱’ 부장판사… 대법, 檢 ‘비위’ 통보 받고도 덮었다
입력 2017-06-16 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