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틸리케 OUT… 외국인 감독 잔혹사 그 끝은?

입력 2017-06-16 05:02

독이 든 성배.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직을 이르는 별칭이다. 특히 외국인 감독들은 대부분 고배를 마시고 불명예 퇴진했다. 울리 슈틸리케(63·독일) 감독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국에서 성공한 외국인 감독은 2002 한·일월드컵에서 한국을 4강에 올려놓은 거스 히딩크(71·네덜란드) 감독이 유일하다. 왜 외국인 감독은 한국에서 성공 신화를 쓰지 못하는 걸까.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는 15일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에서 회의를 열고 ‘도하 참사’의 책임을 물어 슈틸리케 감독을 퇴출시켰다. 이용수 기술위원장은 “후임 감독은 국내 감독이 맡아야 하는 상황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 선수들을 모르는 외국인 감독을 선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차기 감독은 위기관리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슈틸리케 감독과 동반 퇴진하기로 했다.

한국 축구의 외국인 감독 수난사는 2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故) 데트마르 크라머 감독(독일)은 1991년 1월 한국 축구의 첫 외국인 감독으로 부임했다. 올림픽 대표팀 총감독 및 기술고문으로 활약한 그는 바르셀로나올림픽 본선 자력 진출을 이끌었다. 하지만 선수 기용과 전술 등의 문제로 한국인 코칭스태프와 갈등을 빚은 끝에 이듬해 3월 물러났다. 축구협회는 94년 7월 아나톨리 비쇼베츠(71·우크라이나) 감독을 영입했다. 그는 1988 서울올림픽에서 소련(현 러시아)의 우승을 이끌었던 명장이었다. 하지만 1996 애틀랜타올림픽 본선에서 1승1무1패로 8강 진출이 무산되자 현지에서 해고됐다.

히딩크 감독의 성공으로 외국인 감독 수난이 막을 내리는가 싶었지만 아니었다. 국민들의 기대치가 높아져 후임 감독들은 더 큰 고난을 겪었다. 움베르투 코엘류(67·포르투갈) 감독은 2004 아시안컵 예선 성적 부진과 소통 부재로 2004년 4월 중도 하차했다. 2004년 6월 부임한 요하네스 본프레레(71·네덜란드) 감독은 한국을 2006 독일월드컵 본선에 올려놓았음에도 일부 평가전 성적이 좋지 않고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비판에 스스로 지휘봉을 반납했다.

2005년 10월 한국 축구를 맡은 딕 아드보카드(70·네덜란드) 감독은 독일월드컵 조별리그에서 1승1무1패를 거두며 한국에 사상 첫 원정 승리를 안겼으나 16강 진출에 실패한 뒤 작별을 고했다. 이어 핌 베어벡(61·네덜란드) 감독은 선수 차출 문제로 K리그 팀들과 대립각을 세웠고 1년 2개월 만인 2007년 8월 퇴출당했다.

김대길 KBSN 해설위원은 이날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많은 외국인 감독들이 선수단을 장악하는데 실패했다”며 “가장 큰 실패 요인은 선수들과의 소통 부재였다. 슈틸리케 감독도 다른 외국인 감독의 전철을 밟은 것 같다”고 말했다. 김 해설위원은 “외국인 감독을 영입할 경우 전폭적인 지원을 하는 한편 독불장군처럼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하지 못하도록 견제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전 외국인 감독들은 한국을 떠난 뒤 해외 클럽과 A대표팀 사령탑으로 활약했다. 코엘류 감독은 행정가로 변신해 포르투갈축구협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여전히 한국 축구에 애정과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따라서 네트워크가 부족한 한국 축구는 큰 대회를 대비해 이들을 활용할 수 있다.

한편, 대표팀은 당분간 정해성 수석코치의 감독대행 체제로 운영될 전망이다. 축구협회는 곧 차기 기술위원회를 열어 새 감독을 선임할 예정이다. 새 사령탑으로는 허정무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와 김호곤(66) 축구협회 부회장, 신태용 전 U-20 대표팀 감독, 최용수 전 FC서울 감독 등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파주=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