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사’ 고집하던 서울대병원… 정권 바뀌자“백남기, 외인사”

입력 2017-06-16 05:01
김연수 서울대병원 진료부원장이 15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백남기씨 사망원인 수정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최현규 기자

정권이 바뀌니 고(故) 백남기 농민의 사망 원인도 바뀌었다.

서울대병원은 13일 백씨 사망진단서를 고쳐 ‘병사(病死)’에서 ‘외인사(外因死)’로 수정했다. 백씨가 사망한 지 263일 만이다. 사인은 심폐정지에서 급성신부전으로 고쳤다. 일각에서는 서울대병원이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기관감사까지 받으면서 갑작스럽게 이뤄진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서울대병원은 15일 어린이병원 1층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백씨 사망 종류를 병사에서 외인사로 수정했다고 밝혔다. 김연수 서울대 진료부원장은 “오랜 기간 상심이 크셨을 유족분들께 진심으로 깊은 위로의 말씀과 안타까운 마음을 전한다”며 “이번 일에 관련된 분들을 비롯하여 국민 여러분께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점에 대하여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서울대병원에 따르면 사망진단서 변경은 진단서를 작성한 신경외과 전공의가 병원의료윤리위원회의 수정권고를 받아들여 이뤄졌다. 김 부원장은 “올해 1월 유족 측에서 사망진단서 수정과 위자료 청구 소송을 제기해 병원 측에서 적극적인 개입이 이뤄졌고 논의를 통해 전공의에게 수정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사망진단서를 고치면서 사인도 ‘직접사인 급성신부전-중간사인 패혈증-선행사인 외상성경막하출혈’에서 ‘직접사인 심폐기능정지-중간사인 급성신부전증-선행사인 급성경막하출혈’로 바뀌었다. 김승기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과장은 “외상성경막하출혈은 외부의 요인으로 뇌 속에 발생한 출혈을 뜻한다”고 밝혔다. 경찰 살수차에서 쏜 물대포 충격으로 의한 사망임을 인정한 것이다.

백씨는 2015년 11월 14일 제1차 민중총궐기대회에서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뒤 서울대 병원으로 옮겨졌다. 뇌수술을 받고 연명 치료를 받으며 317일간 투병하다 지난해 9월 25일 숨졌다. 당시 백선하 신경외과 교수는 사망진단서에 병사라고 기록했다. 서울대의대생들이 이를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논란이 커지자 병원은 백 교수를 직위해제했다. 백 교수는 현재도 외인사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서울대병원은 감사원 감사를 받고 있다. 2008년 이후 9년 만이다. 서울대병원은 백씨 사망진단서 작성 관련 논란과 함께 최순실씨 국정농단에도 연루됐다. 김 부원장은 사망진단서 수정이 감사 때문이냐는 질문에 “이번 발표와 감사원 감사를 연결시키는 것에 깜짝 놀랐다”며 “이번 감사는 정기 감사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백씨의 딸 백도라지씨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정정이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아직까지 경찰과는 해결된 것이 없고 처벌을 받은 것이 없기 때문에 가해자들의 책임 있는 사과와 처벌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백남기투쟁본부도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늦게나마 고쳐져 다행스럽다”며 “경찰 진압에 대한 진상규명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검찰 수사는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백씨 가족 등은 사건 발생 나흘 만에 당시 강신명 경찰청장과 구은수 서울지방경찰청장 등 7명을 살인미수·경찰관 직무집행법 위반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는 지난해 10월까지 구 전 서울경찰청장, 장향진 전 서울경찰청 차장 등 피고발인들을 불러 조사했지만 사건 접수 1년7개월이 지나도록 결과를 내놓지 않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발표 내용을 입수해 확인해 볼 것”이라며 “조만간 결론이 나지 않겠느냐”고 했다.

이철성 경찰청장도 16일 백씨 사인 변경에 대한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백씨 사망이 물대포 때문이라고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경찰이 병원의 수정된 입장을 수용하고 사과할지, 검찰 수사에 맡기겠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할지 주목된다.

허경구 지호일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