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가 뒷談] 기재부 예산실 ‘월화수목금금금…’

입력 2017-06-16 05:02

기획재정부 내부 익명게시판 ‘공감소통’에 올라온 ‘부총리께 건의합니다’라는 글이 화제다. 지난 11일 예산실 직원이라 칭한 한 공무원은 “3월부터 공약, 추가경정예산, 본예산 검토로 주말과 휴일을 다보내고 있다”면서 “내년 본예산 검토도 시간이 부족한데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 있는 예산실 출신들은 사사건건 공약자료를 달라고 독촉”이라고 적었다. 이어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지만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게 전제조건”이라며 “이게 사람답게 사는 겁니까”라고 하소연했다.

이 글에는 15일 현재 공감한다는 수백개의 댓글이 달렸다. 한 직원은 “일요일 새벽 1시20분인데 지역공약 작업 중”이라며 “누굴 위한 좋은 나라를 만들려고 이렇게 사람을 인간 이하의 지경까지 몰고 가는지 모르겠다”고 울분을 토했다. 또 다른 직원은 “혼자 사는데 빨래할 시간조차 없다. 2주에 한 번 주말 오전에 빨래할 때마다 세탁기 돌릴 시간도 없이 사는 나 자신이 비참하다”고 했다.

국·과장 등 간부들의 불합리한 지시에 대한 문제제기도 많았다. 또 다른 예산실 직원은 “평일 야근과 주말까지 숨이 턱에 차서 일하고 있는데 한밤중에도, 토·일요일에도, 식사시간에도 카톡이나 전화로 지시가 떨어진다. 어떻게 이렇게 인간에 대한 배려와 예의가 없는지, 우리는 쉼 없이 일하는 기계인가요”라고 썼다. 이밖에도 “미안하다. 국가를 위해 힘내자 이런 말로 덮기엔 지금 상황이 너무 가혹하다” “예산실 출신은 장·차관도 하는데 밑에 직원들만 밤낮없이 고생하는 전형적인 착취구조”라는 댓글도 있었다.

비단 기재부뿐 아니라 새 정부 출범 이후 모든 부처가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 ‘저녁이 있는 삶’을 내걸며 매달 한 번 오후 4시에 퇴근하는 한국판 ‘프라임 프라이데이’는 유명무실해졌다. 경제부처 한 과장은 “그런 제도는 모르겠고 새 정부 출범 이후 밤 11시 퇴근, 주 7일 근무가 상시화됐다”고 말했다. 특히 ‘일벌레’란 별명의 김동연 부총리가 취임하면서 기재부는 물론 관련부처 직원들은 긴장하고 있다. 김 부총리는 이를 의식한 듯 이날 취임사에서 “일의 집중도를 높이면서 주말이 있는 삶을 살자”고 말했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삽화=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