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서정] 아기 새는 어떻게 됐을까

입력 2017-06-15 18:01

야외에 나가면 새를 구경하는 게 즐거움이다. 까마귀, 까치, 직박구리처럼 대담한 새들과 달리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작은 새가 보이면 횡재라도 한 기분이다. 얼마 전에도 뜻밖의 새 구경을 했는데, 그 상황이 지금도 명치에 걸려 있다. 처음에는 작은 관목 아래 열심히 재잘거리며 팔짝대는 작은 새가 눈에 띄었다. 아이, 귀여워라. 올리브그린색이네. 동박새일까? 멀찌감치 쭈그리고 앉아 지켜보니 얼기설기한 가지 뒤에 또 다른 새가 있다. 첫 번째 새보다 조금 작고 전체적으로 옅은 갈색인 듯한 그 녀석도 팔짝거리는데, 아이고, 잠시 후 상황 파악이 된다. 아직 잘 날지 못하는 아이가 땅에 떨어진 거고, 어미가 어떻게든 아이를 인도하려 하는 것이다! 그건 귀여운 광경이 전혀 아니었다. 둘은 필사적이었다.

그 관목이 적당치 않았는지 어미는 옆의 나무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은 한적한 관광지 안의 작은 정원이었고, 두 나무 사이에는 산책길이 있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아기 새가 눈 깜짝할 새에 길을 가로질러 뛰었다. 그러고는 좀 높은 가지에 앉아 부르는 어미를 찾아 힘껏 파닥거렸다. 하나씩 하나씩, 아기 새는 안간힘을 쓰며 나뭇가지를 뛰어올라갔다. 그러다 나동그라지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녀석을 집어 들고 둥지를 찾아 넣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와락 치밀지 않은 것도 아니었지만, 그럴 수도 없고 그러면 안 된다는 건 나도 안다.

다리에 쥐도 나려 하고, 다른 사람들 눈에 띄어 좋을 일도 없고, 무엇보다도 새들이 불안해할 것 같아서 나는 일어섰다. 아기 새는 내 무릎 높이 정도까지 올라가 있었다. 녀석이 무사히 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까? 아니면 어떡했을까? 어디 무성한 잎 뒤에 숨어 며칠 버티다 날개에 힘이 붙어 날았을까? 그때까지 어미가 곁을 맴돌며 보살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그동안 비도 피하고 천적도 피해 살아남았으면 좋겠다. 자연이라는 게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건 알지만 동화 같은 해피엔딩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어미 새야 아기 새야, 힘내렴.

김서정(동화작가·평론가),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