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문재인 대통령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에 대한 대통령의 직접 사과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는 180도 다른 태도이지만, 실질적 절차 마련은 또 다른 문제다. 대통령 의지만으론 해결이 요원하다.
이를 바라보는 조중민씨(43·가명)는 억장이 무너진다. 그는 딸 조현서양(당시 4세)이 왜 죽었는지 알고 싶다. 정황과 증상을 고려하면,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 유력하지만 정부의 인정 과정은 더디고 잔인하다. 옥시 제품 구매 영수증이나 사용한 살균제 사진을 제출하라는 정부의 요구는 피해자들의 가슴을 후벼 판다. 부모의 죄책감을 건드리는 방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는 말한다. “보상금 따위는 중요치 않다. 죽음의 이유를 알아야 원통하게 죽은 딸의 마음을 달래줄 것 아닌가.”
조씨는 기자에게 6년 전 딸의 비극적 죽음에 얽힌 이야기를 어렵사리 털어놓았다. 그의 목소리는 침착했지만 분노가 어려 있었다. ‘가려진 죽음’은 ‘밝혀진 진실’보다 잔혹했다. 6일 그와 만난 날은 온종일 비가 내렸다.
2011년 추석을 앞두고 현서양은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다. 근처 이비인후과 의원에서는 “목이 부어서 그렇다”고 진료했다. 처방전에 따라 약을 먹였지만 차도가 없었다. 이튿날 또 찾아가봐도 마찬가지였다. 9월 10일 오전 현서양의 열은 더욱 심해졌다. 의사는 ‘인후염’으로 보고 처방을 내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딸은 복통까지 호소했다. 다른 소아과 의원에서는 ‘기관지염’과 ‘장염’, ‘장중첩’ 등을 의심했다. 비타민과 항생제가 더해진 수액주사에 딸은 잠시나마 기력을 찾았다. 밥도 잘 먹었다. 체온은 38도. 해열은 아직이었다.
12일 밤 다시 고열이 들끓었다. 열이 39도까지 올랐다. 부랴부랴 소아과의원을 찾아갔지만 이번에도 수액주사 뿐이었다. 의사는 ‘폐렴’ 증상이 관찰된다는 소견을 더했다. 14일 오전 4시 결국 조씨는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엑스레이 촬영 결과 오른쪽 폐는 물로 가득했다. 간과 백혈구 수치가 높이 치솟아 있었다. 응급 상황이었다. 폐에 삽관된 관을 통해 600CC 이상의 물과 이물질이 흘러 나왔다.
15일 오후 9시 딸은 한 시간 이상 발작을 하며 검은 설사를 쏟아냈다. 급히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주치의가 보여준 폐의 엑스레이 사진은 충격적이었다. 오른쪽 폐는 새하얗게 변해있었으며 왼쪽도 섬유화가 진행 중이었다. 의사는 감염을 의심했다. 복합 항생제가 투여됐다. 그렇지만 세균검사 결과는 깨끗했다. 항생제도 듣질 않았다. 이번엔 뇌부종과 함께 뇌압이 상승했다. 급격히 상태가 악화된 현서양은 CT 촬영은 물론 병상을 옮기는 것조차 어려운 위중한 상태였다.
뇌에 충분한 산소가 공급되지 않아 의사는 “완쾌해도 이전 같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생의 바람과 달리 추가 증상은 계속 나타났다. 엄습해오는 죽음과의 힘겨운 싸움이 며칠동안 이어졌다. 부모의 간절한 바람에도 딸은 결국 눈을 뜨지 못했다. 19일 오후 5시 5분. 응급실에 온지 불과 닷새만의 일이었다.
딸을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은 주치의도 알지 못했다. 설상가상 당시 운영하던 회사마저 더 이상 손쓸 방도가 없을 만큼 망가져 있었다. 경제적 어려움과 딸을 잃은 고통을 오롯이 속으로 삭혀야만 하던 시절이었다. 도대체 딸을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실마리를 뉴스에서 찾을 수 있었다. 가습기 살균 피해자들의 사례가 속속 보도되고 있었다. 폐섬유화와 급작스러운 사망. 조씨와 아내는, 그러나 서로에게 침묵했다. 드러난 진실 앞에 속수무책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무던히도 애를 쓴 것이다.
지난해가 되어서야 용기를 낼 수 있었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 가습기 살균제 피해 접수를 마쳤던 것이다. 현재 그는 피해자 인정을 기다리고 있다. 죽음의 이유를 밝히고 싶지만 한편으로 두렵다. 죄책감 때문이다. “옥시 가습기 살균제는 금방 동이 났다.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직접 가습기 안에 살균제를 부었다.”
새 정부 들어 사태 해결의 물꼬가 트이길 기대하지만 분노는 여전하다. 무엇보다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가 도처에 널려 있었다는 사실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아이 건강에 유익하다는 말을 믿은 내가 죄인이다.” 유아 건강에 유익하다는 카피라이트는 옥시의 술책이었지만, 이를 사방에 전파시킨 미디어와 관리 책임을 저버린 정부가 그는 한없이 원망스럽다.
현재 피해 판정이 끝난 1∼3차 신고자 1282명 중 276명만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 관련성 1단계 또는 2단계 판정을 받았다. 올해 초 피해 구제를 위한 특별법이 제정됐지만 그 대상은 1·2단계 피해자들에 국한된다. 이러한 정부의 방침은 조씨를 더욱 좌절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가 기억하는 딸의 모습은 한결같다. “아이가 TV를 보고 있으면 누워서 옆모습을 바라보곤 했다. 사랑스러웠다.” 한순간 딸을 잃어버린 아버지는 과거 한때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눈물짓는다. 그러나 눈물을 닦아줄 의무를 정부는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김양균 기자
네 살 현서가 세상 뜬 이유… 하나님은 아신다
입력 2017-06-18 19: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