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청소년 性교육 손놓고 있다

입력 2017-06-15 00:02 수정 2017-07-26 14:34

경기도 수원시 A교회에서 중등부를 담당하는 이덕영(가명·34) 목사는 최근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중등부 여학생 중 한 명이 남자친구와 성관계 후 임신을 한 것이다. 남자친구는 자취를 감췄고 여학생은 부모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했다.

이 목사는 “아이에겐 매우 불행한 일인데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컸다”면서 “이제라도 아이들에게 성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알려주고 싶은데 무엇을 어떻게 교육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청소년들의 성문제는 심각한 수준이지만 교회 내 성교육은 미미하다. 교육 프로그램이나 자료도 턱없이 부족해 교회가 청소년 성교육에 더 많은 관심을 보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신학대 신승범(기독교교육과) 교수가 최근 청소년 담당 교역자 9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43%가 담당 청소년들에게 성교육을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나마 성교육을 하는 교회들도 수련회 특강 프로그램으로 연중 한두 차례만 실시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성교육을 하지 않는 이유는 ‘적절한 자료가 없어서’(32%)라는 답이 가장 많았다. ‘다양한 견해가 존재하는 민감한 영역이기 때문에 조심스럽다’(26%) ‘시간과 예산이 부족해서’(12%) ‘교회 안에서 다루기 부적절한 주제라고 생각하기 때문’(8%)이라는 답이 뒤를 이었다.

‘소속 교단이 성교육 관련 교재를 제공하느냐’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94%가 ‘제공하지 않는다’거나 ‘모르겠다’고 답해 청소년 성교육에 둔감한 한국교회의 현실을 보여줬다.

교육부와 보건복지부가 최근 조사한 ‘청소년건강행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10대 청소년 중 성경험이 있는 학생들의 평균 연령은 12.8세다. 청소년 중 80%는 인터넷을 통해 음란물을 접했다. 음란물을 보는 초등학생들의 비율도 늘고 있다.

기독청소년들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롭기 어렵지만 교회가 적극적으로 나서 올바른 성가치관을 심어주는 사례를 찾기는 어렵다. 한국교회의 성교육 부재에 대한 문제제기는 꾸준히 있었다. 2013년 한국교회탐구센터가 미혼 기독청년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서도 응답자의 84.7%가 ‘교회에서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답한 반면 실제 교회에서 성교육을 받은 경험은 17.7%에 불과했다. 4년이 지났지만 별다른 변화가 없는 셈이다.

신 교수는 “모든 인간은 성적 존재로 창조됐지만 타락한 성은 때로 인격을 파괴하며 낙태, 영아유기·살해 등 생명경시 현상을 촉발한다”며 “청소년 시기에는 성에 대한 관심도 많이 생기고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할 수 있기 때문에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성을 창조하고 선물로 주신 하나님의 의도를 청소년들이 알게 하고, 스스로를 소중히 여길 수 있도록 교회가 나서야 한다”며 “교단 차원에서 성교육 전문가 양성 및 교재·프로그램 개발, 부모교육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