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법 중의 악법으로 불리던 일제 강점기 ‘치안유지법’을 떠올리게 하는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조직적 범죄 처벌법 개정안’(일명 ‘공모죄 법안’)이 중의원에 이어 14일 참의원 통과를 앞두고 있다. 집권 자민당과 연립여당인 공명당은 4개 야당의 반발을 힘으로 누르고 강행 처리할 방침이다. 야당은 내각 불신임안 제출 등으로 저항했지만 양원의 3분의 2를 장악하고 있는 여당을 막는 것은 역부족이다.
“테러 방지” vs “비판세력 탄압”
일제가 반체제 활동을 억누르려고 만든 치안유지법은 당시 식민지 조선에도 적용돼 수많은 조선인이 사상범으로 처벌받았다. 1943년 일본 유학 중이던 시인 윤동주도 친구들과 반체제 결사를 모의했다는 혐의로 붙잡힌 뒤 옥사했다. 최근 아사히신문은 윤동주의 생애를 다룬 한국영화 ‘동주’를 소개하면서 그에게 적용됐던 치안유지법과 매우 비슷한 법안이 다시 나왔다고 전했다.
2000년대 ‘공모죄 법안’이란 이름으로 3차례나 국회에 제출됐다가 폐기된 법안이 약간의 손질을 거쳐 다시 나온 것이다. 반대파는 앞서 폐기됐던 것과 본질적으로 달라진 게 없다는 이유로 계속 공모죄 법안이라고 부른다. 반면 아베 정권은 범죄 공모 자체만으로 잡아넣는다는 인상을 주는 공모죄 대신, 테러가 잦아진 요즘 시대에 꼭 필요할 것만 같은 ‘테러 등 준비죄’라는 새 이름을 붙였다.
2명 이상(조직적 범죄 집단)이 범죄를 계획하고 이 중 1명 이상이 준비행위를 했을 때 계획에 가담한 모든 사람을 처벌할 수 있도록 한 법안이다. 실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아도 계획과 준비만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게 골자다.
아베 정권은 “일반 시민은 적용 대상이 아니며 2020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테러 대비용으로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야당과 시민사회 일각에선 테러 방지라는 미명으로 국민을 감시하려는 것이고 정권에 비판적인 시민단체나 노동조합 등에도 얼마든지 적용될 수 있다며 격렬히 반발했다.
영화감독 스오 마사유키는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국가가 끊임없이 감시하는 사회가 된다”며 “한 인간으로서 용서할 수 없는 법안”이라고 규탄했다. 그는 원전이나 오키나와 미군기지 문제와 같은 주제로 정부에 비판적인 영화를 만드는 경우를 예로 들었다. 감독과 스태프가 작품을 구상하고 준비하는 것 자체가 범죄 집단의 준비행위로 여겨져 단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지프 카나타치 유엔 인권이사회 프라이버시권 특별보고관도 아베 총리에게 서한을 보내 “조직적 범죄 집단, 계획, 준비행위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지 않고 법률이 자의적으로 적용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위험 수위” 경고에도 냉담한 여론
역사소설가 한도 가즈토시는 정권의 폭주를 깊이 우려했다. “전쟁을 하려는 국가는 반드시 반전(反戰)을 호소하는 사람을 억압한다. 전쟁할 수 있는 나라를 목표로 하는 아베 정권은 치안유지법을 공모죄로 대체하고 있다. 지금 일본은 매우 위험한 곳까지 와 버렸다.”
그러나 일본의 국민 여론은 전혀 뜨겁지 않다. 지난 12일 NHK방송 여론조사에서 공모죄 법안 찬성이 29%로 반대(23%)보다 많았다. 찬반 어느 쪽도 아니라는 응답은 39%에 달했다. 이와테대 재학생 다시부 아쓰시는 “감시 사회라는 게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현실감이 없고 ‘테러 방지’라고 하니 납득되는 면도 있어 찬반을 단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동안 각지에서 열린 반대 집회도 정권에 경각심을 줄 만큼 규모가 크지 않았다. 작가 오치아이 게이코는 “아베 정권은 무리하게 법안을 처리해도 높은 지지율을 유지한다. 세상이 불안하니까 강한 자와 함께 있고 싶어 하는 심리가 작용하는 것 같다”고 탄식했다.
도쿄=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윤동주 가둔 일제 악법, 테러 방지 명분에 日서 부활하나
입력 2017-06-14 18: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