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대미(對美) 무역수지 흑자폭을 줄여 미국과의 통상 마찰을 해소하기 위해 무기와 셰일가스 수입 확대를 적극 검토하고 있는 데는 이유가 있다. 미국산 수입 물량을 늘려도 시장 저항이 적은데다 정부의 컨트롤이 가능한 품목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양국 정상의 정책 기조와도 맞아떨어진다. 무기와 가스 수입은 문재인 대통령의 ‘자주국방’ 실현과 ‘탈핵’·미세먼지 방지를 위한 대체에너지 확보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석탄연료 활성화’도 지원할 수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14일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에 체면을 살려줄 만한 선물을 고민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중국을 주목했다”고 말했다.
두 나라는 최근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역대 미국 대통령이 첫 방문지로 이웃 나라인 캐나다나 멕시코를 선택한 관례를 깨고 사우디 방문을 택했다. 트럼프는 사우디와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인 약 1100억 달러(약 124조원)에 달하는 무기 판매 계약을 체결했다. 중국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선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14년 만에 재개하고 셰일가스 수입 확대를 약속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두 나라 정상과 만난 직후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렇다고 한국 정부가 사우디나 중국을 무작정 따르는 것은 아니다. 이해득실을 따져 미국산 셰일가스와 무기 수입에 주목했다.
우선 미국 측의 한·미 FTA 재협상 근거인 무역수지 흑자폭을 줄이려면 수출을 줄이는 것보다 수입을 늘리는 게 효과적이라 판단했다. 또 무기와 가스는 수입이 늘어도 시장을 교란하지 않고 기업들을 강제하지 않아도 될 만한 품목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우리나라 무기의 대부분은 국방 예산으로 구입하고 가스는 한국가스공사가 독점 수입하고 있지만 공기업이라 정부의 통제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의 정책 기조와도 맞아떨어진다. 문 대통령은 선거기간 중 ‘자주국방’을 강조하며 국방예산 증액을 약속했다. 미세먼지 감축, 탈핵 공약을 지키기 위해 석탄화력발전소 가동과 원전 건설을 중단하려면 대체에너지 확보도 시급하다. 셰일가스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보인다.
다만 미국의 무기 수입이 수출입 통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오해는 풀어야 할 과제다. 무기 거래가 수출입 통계에 잡히지 않아 한국의 대미 무역수지가 흑자였다는 것이다. 이날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기자회견에서도 제프리 존스 전 암참 회장이 “한국의 미국산 방산 제품 수입량인 대외군사판매량을 무역수지 산출에 반영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산업부 관계자는 “오해다. 이 같은 주장이 제기돼 관세청과도 여러 차례 통화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산자부의 설명은 모든 무기의 수입 단가가 수출입 통계에 잡힌다는 것이다. 스웨덴의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가 2015년 발표한 ‘세계 무기거래 동향’을 보면 2011∼2015년 한국은 전 세계 무기 수입량의 2.6%를 차지해 10위에 올랐다.
이처럼 한국의 무기 수입량이 많은데도 수출입 통계에서 빠진 것처럼 보이는 것은 코드 분류 때문이다. 총포는 국제통일상품분류체계에 따라 대외 무역거래 상품을 총괄적으로 분류한 코드(HS코드)가 있어 수출입 현황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전투기나 통신장비 등 큰 규모의 무기는 HS코드 자체가 없다. 전투기는 항공기에 포함되고 전투기나 전함, 미사일 등의 유지 보수나 기술이전 비용은 서비스 통계에 잡히는 식이다.
세종=서윤경 기자, 유성열 기자 y27k@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
‘무기·셰일가스 수입’ 카드 왜… 시장 저항 적고 트럼프 체면 살려주고
입력 2017-06-15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