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대 3 참패, 사령탑 경질론, 손흥민의 오른쪽 팔뚝 뼈 골절…. 14일 아침 카타르 도하에서 날아온 비보는 충격적이었다. 한국 축구는 ‘도하 참사’로 만신창이가 됐다.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울리 슈틸리케(63) 감독은 경질의 칼날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실패한 감독이야 떠나면 그만이지만 추락한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것은 오롯이 한국 축구의 몫으로 남았다.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은 이날 카타르 도하의 자심 빈 하마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카타르와의 2018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 8차전 원정경기에서 충격패를 당했다. 최종예선 A조 2위인 한국은 4승1무3패(승점 13)로 3위 우즈베키스탄(4승4패·승점 12)과의 간격을 벌리지 못해 2위까지 주어지는 월드컵 본선행 티켓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슈틸리케 감독 불명예 퇴진 불가피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는 15일 오후 2시 파주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에서 슈틸리케 감독의 거취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이번엔 경질 결정이 유력하다. 카타르 원정길에 동행했던 이용수 기술위원장은 “개인적으로는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며 감독 교체를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2014년 9월 취임한 슈틸리케 감독은 2015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준우승을 이끌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지난 3월 23일 중국전에서 0대 1로 패하면서 경질 위기를 맞았다. 슈틸리케 감독은 기술위원회로부터 재신임을 받았지만 이번에 도하에서 결정타를 맞고 2년 9개월 만에 불명예 퇴진하게 됐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최종예선에서 역량을 보여 주지 못했다. 원정 4경기에서 1무3패에 그쳤고, 홈에서 거둔 4승도 모두 1점 차 신승이었다. 경기 결과뿐만 아니라 내용도 좋지 않았다. 그는 의미 없는 점유율 축구만 고집했다. 이란의 ‘선수비-후역습’처럼 뚜렷한 색깔이 없이 뒤에서 볼을 돌리며 점유율을 높이다가 전방 공격수들의 개인 기량으로 골을 만들어 내는 전술만 들고 나왔다. 그러다 선발 출전한 원톱이 지치면 후반에 장신 공격수 김신욱을 투입시켜 ‘뻥축구’를 했다. 상대 팀은 슈틸리케 감독의 전술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
한국은 카타르전에서도 90분 내내 공격과 수비에서 답답한 모습을 보였다. 선수 기용에도 문제가 많았다. 경기력이 올라온 K리거들을 외면한 채 경기 감각이 무뎌진 해외파들을 중용했다. 이번에 이근호와 이명주, 황일수 등 새로운 자원들을 뽑았지만 정작 카타르전에선 늘 자신이 내세웠던 선수들을 선발 출전시켰다.
슈틸리케 감독은 귀국 후 “자신 사퇴에 대해선 생각해 보지 않았다”며 “감독은 항상 모든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기술위원회 결정에 따르겠다”고 밝혔다.
고개 숙인 축구협회와 태극전사들
축구협회의 안일한 대처도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됐다. 감독 교체의 골든타임을 놓친 것이다. 기술위원회는 지난 중국전 후 슈틸리케 감독의 거취를 논의했다. 하지만 마땅한 대체자가 없다는 이유로 유임을 결정했다. 그런 이유로 믿음을 주지 못하는 감독을 계속 신임하는 것은 배임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축구협회는 조만간 슈틸리케 감독 경질과 함께 후임 감독을 발표할 예정이다. 국내파 후임 감독 후보로는 허정무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 신태용 전 U-20 월드컵 감독, 김호곤 축구협회 부회장 등이 거론된다.
태극전사들의 부실한 경기력도 도마에 올랐다. 최종예선 내내 골 결정력은 형편없었고 킥은 부정확했다. 패스 미스도 쏟아냈다. 전술 실패를 논하기 전에 기본적인 플레이도 소화하지 못하는 선수들의 기량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주장 기성용은 “실점하면서 우리 선수들의 자신감이 떨어졌다”며 “선수들은 월드컵에 가야 한다는 욕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이란과의 9차전(8월 31일·홈경기)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카타르전 전반 공중볼 경합을 하다 넘어져 오른쪽 팔뚝 뼈 골절상을 당한 손흥민은 입국한 뒤 곧바로 경희의료원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정확한 진단을 받은 뒤 수술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수술대에 오를 경우 회복까지 3주가량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인천공항=박구인 기자, 김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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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꿇은 한국 축구… 도하 침몰 ‘선장’ 슈틸리케 키 내려놓기 불가피
입력 2017-06-14 18:32 수정 2017-06-14 2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