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엔터 스포츠] 76세, 풀코스 600번째 도전!

입력 2017-06-16 05:00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 이벤트 광장에서 열린 제14회 새벽강변 마라톤 대회 풀코스에 참가한 칠순마라톤동호회(칠마회) 회원들이 일렬횡대로 대회장 주변을 뛰며 몸을 풀고 있다. 왼쪽부터 정진우 최남수 김동호 김용석 정진원씨. 서영희 기자
지난 4일 오전 6시30분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 이벤트 광장. 일요일 아침 이른 시간인데도 가벼운 운동복 차림을 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출발시간이 오전 7시로 예정된 제14회 새벽강변 마라톤 대회의 참가자들이었다. 그중에서도 구릿빛 피부에 젊은이들 못지않은 건장한 체격을 자랑하는 어르신이 눈에 들어왔다. 가슴 중앙에 ‘칠마회’(칠순마라톤동호회)라는 단어가 새겨진 파란색 민소매 유니폼을 입은 채 몸을 풀고 있는 김동호(76) 회원이었다.

10분쯤 더 지났을까. 마침내 칠마회 소속의 회원 다섯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회원들은 마치 ‘독수리 5형제’처럼 일렬횡대로 늘어서더니 힘찬 기합소리와 함께 공원 곳곳을 뛰며 달릴 준비를 했다. 어느 정도 가볍게 몸을 푼 뒤에는 출발선으로 향했다. 마라톤의 시작을 알리는 휘슬 소리가 울려 퍼지자 칠마회 회원들도 일제히 힘찬 발걸음을 내딛었다. 42.195㎞ 풀코스 완주를 향한 또 한 번의 도전이 시작된 것이다.

인천 서구 가좌동에 사는 김씨는 이날 마라톤에 참가하고자 새벽 첫차를 타고 대회장을 찾았다. 70대 후반의 노익장이지만 마라톤 대회가 열리는 곳이라면 전국 어디든지 찾아다니는 열혈 마니아다. 원한다면 국제 마라톤 대회 참가를 위해 해외에 나가는 일에도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50대만 해도 운동을 즐기지 않았다. 그러던 중 환갑을 앞둔 2000년부터 건강관리 차원에서 처음 달리기 시작했다. 그는 “당시 체중이 100㎏이었는데 지금은 사람 한 명이 빠져나갔다. 66㎏이다”며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처음엔 재미삼아 마라톤 대회에서 가장 짧은 코스인 5㎞에 도전했다. ‘금방 뛰겠지’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엄청 힘들었단다. “얕잡아봤다가 뛰고 나니 온몸이 아파서 아주 혼쭐이 났다”며 회상했다.

김 회원은 완주 때 성취감을 주는 마라톤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매번 뛸 때마다 하나씩 배우는 게 있다고 했다. 15일에 1번, 1주일에 1번꼴로 마라톤 참여 횟수를 조금씩 늘려나갔다. 5㎞와 10㎞, 하프코스 순으로 뛰는 거리도 점점 늘렸다. 운동을 시작한 지 2년 만인 2002년 춘천 마라톤 대회에서 생애 첫 풀코스 완주에 성공했다. 4시간26분이 걸렸다. 그는 “풀코스를 완주하니까 횟수와 기록에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숫자가 바뀌는 재미가 있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금도 주 1∼2회 이런저런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다. 연간으로는 대략 70회가량 뛰고 있다. 자신의 풀코스 최고 기록은 3시간40분44초. 우리나라에서 108번째로 100회 풀코스 완주에 성공했고, 100㎞ 이상의 울트라 코스에도 두 차례 참가했다.

기록에 더 욕심을 낼 법도 하지만 요즘 그는 나이를 고려해 몸에 맞춰 운동량을 조절하고 있다. 그는 “욕심을 내다 잘못하면 부상당할 수 있다. 지금은 내 건강을 위해서 뛰고 있다. 힘들어서 다신 안 한다고 해놓고도 2∼3일 있다가 다시 하게 되는 게 마라톤”이라며 껄껄 웃었다.

이날 대회 풀코스는 여의도 한강공원 이벤트 광장에서 출발해 1차 반환점인 방화대교와 2차 반환점인 광명대교를 거쳐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는 코스였다. 김씨는 온몸을 땀에 적신 채 4시간47분37초42의 기록으로 결승점을 통과했다. 그러고는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려 또 한 번 해냈다는 듯 함박웃음을 지었다. 개인통산 풀코스 완주 기록을 598회로 늘린 순간이다. 지난 14일 수요마라톤 대회에 이어 17일 서울 구로구에서 열리는 공원사랑 마라톤 대회에 나서면서 풀코스 600회 완주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늦은 나이에 갑자기 마라톤을 시작하면 몸에 무리가 오진 않을까. 김씨는 “마라톤은 내 몸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운동인 것 같다. 특별한 장비도 필요 없다”며 “늦게 시작한다고 겁먹을 필요는 없다. 66세에 처음 시작한 사람도 봤다”며 노인들에게 마라톤을 추천했다. 이어 “나이와 몸에 맞춰 꾸준한 연습을 한다면 몸을 건강히 만드는 데 마라톤보다 좋은 게 없다”고 강조했다.

건강한 노후를 즐기고 친목을 도모하고자 2007년 4명의 회원이 모여 창립한 칠마회는 현재 30명이 활동 중이다. 전 회원이 풀코스 200회 이상의 완주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풀코스 공식대회 완주 경험이 있는 70대 이상이라면 거주 지역에 관계없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다. 여자는 65세 이상부터 가입할 수 있다.

그는 마라톤 동호회 활동의 장점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동호회 활동을 하면 혼자 마라톤 할 때보다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어요. 모자란 부분을 회원들과 교류하고 뛰는 노하우나 기술을 비교해볼 수 있습니다.”

칠마회 회원들은 9월 17일 러시아 이르쿠츠크주 바이칼스크에서 열리는 ‘2017 바이칼 마라톤(Baikal Marathon)’ 대회에 단체로 참가하며 한국인의 노익장을 과시할 예정이다.

김씨는 “마라톤 대회의 참가비가 4만∼5만원 수준인데 어르신들을 위한 참가비 할인 등의 혜택을 정부나 지자체에서 지원해줘 마라톤을 접하는 노인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을 피력하고 자리를 떠났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 사진=서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