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누군가 기획하고 집필한다. 원고는 수차례 교정을 거친 뒤 인쇄된다. 이 과정에 여러 사람의 노고가 필요하다.
기독교 교양서로 유명한 출판사 비아(대표 김경문)는 교정을 할 때 독회(讀會)를 한다. 편집자 번역자 독자 등이 다 모여 책을 읽으며 내용을 검토하고 문장을 읽기 쉽게 바꾼다. 대부분 출판사는 필자와 편집자가 번갈아 교정을 한다. 다 모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비아의 독회 풍경이 진귀한 이유다.
지난달 17일 오후 비아의 ‘칼 바르트’ 독회 현장을 찾았다. 이 책은 칼 바르트(1886∼1968) 입문서다. 햇빛이 따사로운 서울 서대문구 신촌 한 카페에 남자 다섯 명이 테이블에 앉아 하얀 종이 뭉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교정지였다.
한 사람이 문장을 소리 내 읽었고 다른 사람들은 “이 문장 이상하지 않아?” “어떻게 바꾸지” 하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이 시기 바르트는 ‘오늘의 신학적 실존’이라는 소책자를 썼는데 여기서 그는 교회의 고유한 자유와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주님임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한 독자 성현철(31)씨가 본문 18쪽을 읽고 있었다.
민경찬(34) 편집장이 “교회의 고유한 자유와 유일한 주님이라는 대구 어색하지 않나요”라고 물었다. 번역자 윤상필(36)씨가 고개를 끄덕이며 “예수를 뺄까요”라고 했다. 다들 문장을 곱씹으며 이리 저리 문장을 새로 만들었다. “‘교회에 고유한 자유가 있으며’라고 해서 뒤의 문장과 연결하면 어때요”라는 물음에 방현철(32) 마케터가 냉큼 “그게 낫네요”라고 했다. “뒤도 ‘주는 예수 그리스도뿐’이라고 바꾸죠”라 했고 좋다는 반응이 나왔다.
민 편집장이 “주에는 한자 ‘主’를 병기하고요”라고 했다. 깨알같이 고쳤다. 디자이너 손승우(32)씨가 고친 내용을 노트북 화상 교정지에 바로 반영했다. 고친 문장을 점검하는 차원에서 손씨가 다시 읽었다. “이 시기 바르트는 ‘오늘의 신학적 실존’이라는 소책자를 썼는데 여기서 그는 교회에 고유한 자유가 있음을, 주主는 예수 그리스도뿐임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한 문장을 고치는 데 수 분이 걸렸지만 고친 문장은 훨씬 자연스러웠다. 이렇게 꼼꼼하게 한 문장씩 다듬어 나갔다. 152쪽 분량의 소책자이지만 독회는 이틀에 걸쳐 15시간가량 걸렸다. 편집장과 번역자는 별도로 만나 해설 부분을 5시간 더 독회했다.
2009년 창립된 비아는 계속 독회를 하고 있다. 민 편집장은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본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아무래도 여럿이 같이 읽다보면 더 좋은 문장이 나온다”고 했다. 디자이너 손씨는 “대면하지 않으면 교정된 원고를 제가 일일이 입력하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이렇게 만나서 바로 바로 입력하기 때문에 교정 시간이 전체적으로 절약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만든 책이어서일까. 비아에서 낸 책은 문장이 쉽고 잘 읽힌다고 한다. ‘칼 바르트’는 이런 교정을 거쳐 보름 뒤 출간됐다.
■ 루터·칼뱅 이후 최고 신학자 칼 바르트에 대한 입문서
칼 바르트/마이클 레이든 지음/윤상필 옮김/비아
루터와 칼뱅 이후 최고의 개신교 신학자로 평가받는 칼 바르트 입문서다. 윤리 신학을 중심으로 바르트 신학의 출입구를 친절하게 안내한다. 본문 60여쪽에는 바르트의 생애, 윤리에 대한 접근, 윤리 신학의 교훈 등이 나온다. 비슷한 분량의 역자 해설은 그의 삶과 신학을 전체적으로 조망한다. 배경지식이 많지 않다면 해설을 먼저 읽는 게 좋다.
■ 곁들여 읽을만한 책
기독론·삼위일체론·종말론 등 바르트 신학 일목요연하게 소개
위대한 열정/에버하르트 부쉬 지음/박성규 옮김/새물결플러스
입문서로 칼 바르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면 이 책에 도전하면 좋다. ‘칼 바르트 신학 해설’이 부제다. 방대한 바르트 신학을 일목요연하게 소개한다. 그의 기독론 삼위일체론 창조론 칭의론 성령론 종말론 등을 다룬다. 바르트 사상 전체의 맥락을 제시하고 있다. 독일 괴팅겐대 명예교수인 저자는 1965∼1968년 바르트의 개인 조교를 지냈다.
글=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사진=강민석 선임기자
쉽게 술술 읽히는 ‘칼 바르트’ 이런 비결이…
입력 2017-06-15 0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