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축구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침대축구’다. 이기고 있을 때 시간 끌면서 그라운드에 누워 버리는 이란 선수들 때문에 한국도 애를 많이 태웠다. 하지만 최근 이란은 침대축구를 하지 않는다. 굳이 침대축구를 하지 않아도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란 축구에서 침대를 치워 버린 이는 카를로스 케이로스 대표팀 감독이다. 이란에 사상 첫 2회 연속 월드컵 본선 티켓을 안긴 그는 이란 국민들에게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다.
이란은 13일(한국시각) 테헤란 아자디 스타디움서 열린 우즈베키스탄과의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A조 8차전에서 2대 0으로 이겼다. 승점 20점(6승2무)을 쌓은 이란은 남은 2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아시아에서 처음 월드컵 본선행을 확정지었다.
케이로스 감독은 ‘선수비-후역습’의 효율적인 축구를 추구한다. 튼튼한 방어막을 친 뒤 원샷원킬의 공격으로 승리를 가져간다. 이로 인해 이란은 최종예선 8경기에서 8골을 뽑아내는 동안 한 골도 내주지 않았다. 이런 전술을 가다듬게 된 것은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의 쓰라린 실패에 기인한다. 당시 이란은 조별리그에서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등 강팀을 맞아 극단적인 수비 전술로 이변을 꾀했지만 1무2패 최하위에 그쳤다. 효율축구를 실감했고 찬스에 강한 공격수 아즈문 등 탈아시아급 선수들을 길러내면서 장기적인 ‘러시아 로드맵’을 완성했다.
전술뿐 아니라 케이로스는 선수, 팬들과 끊임없는 소통을 통해 이란 축구를 근본부터 바꿔 놓았다. 레자 구차네자드(30·헤이렌베인)와 아쉬칸 데자가(31·볼프스부르크) 등 이중국적 선수들을 설득해 이란 대표팀 유니폼을 입게 했다. 그는 유럽파 선수들에게 “멀리 떨어져 있어도 늘 지켜보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며 이들을 살갑게 챙기고 있다. 선수들은 감독이 자신들과 소통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신뢰한다. 팬서비스도 으뜸이다. SNS를 통해 팬들에게 대표팀 운영 방안과 선수들의 활약상을 자세하게 전하고 궁금증을 풀어준다.
한국에서 과거 ‘주먹감자’ 사건 등 몰상식한 언행으로 미운 털이 박혔던 케이로스 감독. 역설적이게도 우즈베키스탄과 치열한 본선 티켓 경쟁을 벌이고 있는 한국은 이번에 그의 덕을 톡톡히 봤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수석코치, 포르투갈 대표팀 감독 등을 거친 노련한 케이로스 감독이 남은 예선전과 러시아 본선에서 어떤 흥미진진한 전술을 선보일 지가 벌써부터 관심거리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케이로스 감독 얄밉도록 영리했다… 이란, 사상 첫 2회 연속 월드컵 본선행
입력 2017-06-13 18:39 수정 2017-06-13 2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