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 재활복지의 뉴패러다임을 찾아서] 한국도 ‘제2의 헬렌 켈러’ 나와야 한다

입력 2017-06-14 21:22
시청각중복장애인 조영찬 전도사가 척수장애인인 부인 김순호씨와 촉각지화법으로 대화를 하고 있다. 오른쪽 윗사진은 미국 뉴욕 헬렌켈러센터 현판. 아래 사진은 장애인의 날을 기념해 KT본사에서 열린 ‘시청각중복장애인 소통의 날’ 행사. 서울한영대 제공

우리나라 장애인복지법에는 시각장애와 청각장애를 비롯 지체 언어 심장 신장 지적 자폐성 정신 안면 뇌병변 등 15가지 장애 유형이 규정돼 있다. 아울러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에는 이외에 정신지체, 정서행동장애, 학습장애, 발달지체 등 11가지의 장애 유형을 추가하고 있다.

하지만 어디에도 ‘시청각중복장애’는 장애 유형에 포함돼 있지 않다. 우리나라는 이 시청각중복장애(Deaf-Blind) 불모지와 다름이 없는 셈이다. 시청각중복장애인은 일반적으로 인구 1만명당 한 명씩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7000여명이 되는 것으로 추산됐고, 최근 장애인구 실태조사를 분석하면 무려 1만3000명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처럼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시청각중복장애의 경우는 복지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곳이 없는 상태다. 언어나 의사소통이 전혀 안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보 습득이나 교육권 보장은 물론 고용이나 복지의 총체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사실상 삶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

국내 200여 장애인복지관도 시청각중복장애인이 서비스를 받을 곳이 단 한 군데도 없다. 그나마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회(이사장 김선태 목사)가 3년 전 ‘설리번학습지원센터’를 개관하고 시청각중복장애인 재활에 도움을 주고 있다.

미국은 장애인복지관은 없지만 시청각중복장애인을 위한 ‘헬렌켈러센터’가 뉴욕본부를 비롯 도시 10곳에서 운영되고 있다. 헬렌켈러센터는 시청각중복장애인의 언어 즉 의사소통 기법을 개발해 보급하는 게 주 업무다.

소통기법을 살펴보면 촉각지화법, 헬렌켈러가 사용했던 타도마(Tadoma)법, 점자대화기기, 점자타자전화기, 점자화면전화기, 손바닥글씨 등 다양하다. 그것을 시청각중복장애인의 의사소통 상황에 따라 개인 맞춤형으로 고안해 주고 있다.

지난해 글로벌 장애청년 드림팀 일원으로 미국 헬렌켈러센터를 방문했던 조원석(25·숭실대 사회복지학과)씨는 “헬렌켈러센터의 세심한 배려와 관리가 인상적이었다”며 “이곳은 일자리를 개발해 주고 주거환경도 시청각중복장애인이 혼자 자립생활이 가능한 아파트를 보급해 삶의 편의와 인권을 보장해주고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시청각중복장애인이 사는 아파트에 초인종을 누르면 선풍기 바람이 나와 장애인이 문을 직접 열어주는 무장벽시스템을 설치해 놓았다”고 덧붙였다.

영화 ‘달팽이의 별’은 시청각중복장애인인 조영찬(47·나사렛대학원 박사과정) 전도사와 척수장애인인 김순호(55)씨의 사랑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조 전도사는 촉점자로 부인과 소통하며 현재 시청각중복장애인 단체인 ‘손꿈회’를 운영하고 있다. 손꿈은 ‘설리번의 손’, ‘헬렌켈러의 꿈’에서 따온 말로 200여명이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조 전도사는 “미국은 55년 전인 1962년에 중복장애 관련법을 만들어 권익보장은 물론 의사소통방법을 강구하고 당사자 필요를 정책에 반영하는 체계를 구축했다”며 “미국 정부가 전적으로 지원하면서 육성하는 곳이 곳이 바로 이 센터인데 선진국 문턱에 와 있는 한국은 아직 그 중요성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국내 시청각중복장애인들은 한국에서도 미국 헬렌켈러센터와 같은 유형의 지원시스템이 시급히 설치돼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시설을 통해 시청각중복장애인의 실체 및 욕구 조성은 물론 맞춤형 의사소통 방법을 우선적으로 강구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정보접근권이나 교육권, 고용권 나아가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한 국가책임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펼치고 있다.

한국장애인개발원 연구원 김훈 박사는 “한국사회복지정책연구원이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용역을 받아 시청각중복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소통할 수 있는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하는 특수기기를 개발하는 것은 아주 바람직하고 기쁜 일”이라며 “아울러 이 기기가 많이 보급될 수 있도록 국가적 사회적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촉점자, 촉수화가 개발 중에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이 역시 문화체육관광부에서 특수언어로 지정해야만 널리 보급될 수 있다. 제도적 후원이 요청된다”고 했다. 한국도 하루빨리 시청각중복장애인을 장애유형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불합리한 정책이 시정돼야 우리나라도 제2의 헬렌켈러가 나올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두 가지 장애를 가져 이중 고통을 겪으며 제도적 지원에서조차 제외된 시청각중복장애인들. 이들 모두가 한 사람의 인격체로 존중받고 더불어 살아가는 복지시민이 되는데 이견은 없다. 정부와 사회, 기업과 국민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특별한 관심과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

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