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과 FBI, 의회, 언론, 그리고 러시아. 작금 워싱턴 정가를 뒤흔드는 기관들과 국가의 면면이 70년 전과 어쩌면 그리도 흡사한지 데자뷔(旣視感)를 불러일으킨다. 지난 한 달간 미국 언론을 도배하다시피 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제임스 코미 싸움’을 보노라면 약 70년 전 할리우드를 들썩인 블랙리스트 파문과 놀랄 만큼 닮았다는 게 미국의 연예 전문지 버라이어티의 지적이다. 이 신문에 따르면 그때나 지금이나 애국심과 미국에 대한 충성심, 그리고 진실성이 문제의 핵심이다.
1949년 6월 8일 FBI의 한 보고서가 공개됐다. 아카데미상을 2회나 수상한 프레드릭 마치와 에드워드 G 로빈슨 같은 거물들을 포함해 연예계의 수많은 저명인사가 공산주의자라는 내용이었다. 이에 앞서 47년 미 하원 ‘비 미국적 활동위원회(HUAC)’는 얼마나 많은 공산주의자들이 할리우드에 침투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일련의 청문회를 개최했다. 이 청문회에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1943)’ 등으로 유명한 샘 우드 감독은 할리우드에 공산주의자가 많은 것은 사실이며 특히 작가들 사이에 많다고 밝혔다.
일주일 뒤 각 신문에 할리우드의 저명인사 200여명이 서명한 ‘할리우드의 반격’이라는 제목의 전면광고가 실렸다. 이들은 ‘영화계에 먹칠을 하는 HUAC의 소행에 혐오감과 함께 분노를 느낀다’며 ‘개인의 정치적 소신에 대한 어떠한 조사도 우리 사회의 기본적 민주주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며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어떠한 규제 시도도, 아메리카니즘에 대한 어떠한 자의적인 기준 설정도 우리 헌법의 정신과 문구에 대한 배신’이라고 주장했다.
51년 파라마운트 영화사 중역 프랭크 프리먼은 할리우드가 HUAC에 전폭적으로 협력한 사실을 후회하는 연설을 했다. 그는 왜 영화계 아닌 다른 업계는 조사 대상에서 제외됐는지 의문을 제기하면서 “할리우드가 신문 1면을 장식하기 충분해서인가”라고 울분을 토했다. 빨갱이 색출 열풍의 종언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김상온(프리랜서 영화라이터)
[영화이야기] <126> 70년 전의 데자뷔
입력 2017-06-13 1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