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7석→25석… 프랑스 집권 사회당의 추락

입력 2017-06-13 05:01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북부 르 투케에서 총선 1차 투표를 마친 뒤 차에 올라타면서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마크롱이 이끄는 중도신당 ‘레퓌블리크 앙마르슈’가 압승을 거두면서 그의 개혁 드라이브에 한층 더 힘이 실리게 됐다. AP뉴시스
프랑스 총선 1차 투표 결과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신당 ‘레퓌블리크 앙마르슈’(전진하는 공화국)가 거둔 ‘압승’과 중도좌파 사회당이 직면한 ‘몰락’으로 요약된다. 중도우파 공화당과 함께 프랑스 양당제의 한 축을 이뤄 온 사회당은 회복 불능 수준의 참패에 존립마저 위태로운 상황에 봉착했다.

11일(현지시간)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의 전망에 따르면 사회당은 18일 결선투표 결과에 따라 최악의 경우 현재 보유한 277석 가운데 15석 정도만 지킬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사회당의 1차 투표 득표율은 9.51%로 ‘좌파 경쟁자’인 극좌파 정당 ‘프랑스 앵수미즈’(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의 11.02%보다도 낮은 5위에 머물렀다. 프랑스 좌파의 전통적 대표성마저 상실한 셈이다.

현재의 의석수 전망이 결선투표 이후 그대로 현실이 된다면 사회당은 1969년 창당 이후 48년 만에 가장 처참한 패배를 겪으며 그야말로 ‘군소정당’으로 전락하게 된다. 앞서 사회당은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의 지지도가 급락했던 93년에도 278석에서 56석으로 의석수가 5분의 1 토막 난 참패를 경험한 바 있지만 이번만큼 ‘바닥’은 아니었다.

장크리스토프 캉바델리 사회당 대표는 ‘참담한’ 결과를 받아든 직후 “좌파 전체의 유례없는 후퇴로 기록될 것”이라면서 “특히 사회당은 더더욱 그렇다”며 비통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실제로 캉바델리 본인부터 지역구인 파리 북동부 선거구에서 낙선하는 수모를 겪었고, 지난 대선 사회당 후보였던 브누아 아몽조차 고배를 마셨다. 마티아스 페클 전 내무장관과 오렐리 필리페티 전 문화장관 등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의 ‘간판’ 각료들도 줄줄이 낙선했다.

지난 대선에 이어 연이은 선거 참패로 존폐 기로에 선 사회당에선 내부로부터 절박함에 가까운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기존 지지자들의 외면으로 정당 기부금이 줄고 있는 상황에서 의석수 급감으로 정부 보조금마저 대폭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자 사회당은 파리 중심부의 당사 매각까지 고려하고 있다. 사회당 중진인 쥘리앙 드레는 “매우 심각한 정치적 위기”라며 “결선투표 이후엔 당의 정체성을 완전히 새롭게 정립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회당의 몰락은 앞서 올랑드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일찌감치 예견됐다. 만성적인 경기침체와 10% 안팎의 고공행진을 기록한 실업률, 25%에 육박한 청년층 실업률, 정부 주도 노동개혁에 대한 반발 등 계속된 악재로 올랑드의 임기 말 지지율은 역대 최저 수준인 4%까지 곤두박질쳤다.

야심 차게 내건 부유세 도입 등 좌파적 공약들도 장기 경기침체의 늪에서 흐지부지됐고, 정권이 도입한 우파적 미봉책에 실망한 지지자들은 선명한 좌파 노선을 고수한 사회당 출신 장뤼크 멜랑숑이 대표로 있는 극좌의 ‘프랑스 앵수미즈’로 몰려갔다. 일부 지지층은 중도 실용주의를 표방하며 사회당을 박차고 나간 마크롱에게 시선을 돌리며 견고했던 사회당 지지층은 결국 세 방향으로 갈라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프랑스를 강타한 연쇄 테러로 안보 책임론까지 제기되면서 올랑드 정권은 결국 지지율 반등에 실패했다.

바닥에 꽂혀버린 지지율에 올랑드는 결국 프랑스 역대 대통령 중 처음으로 연임에 도전하지 못했고, 사회당의 인기도 덩달아 급락했다. 올랑드 대신 출마한 사회당의 아몽 후보는 지난 대선 1차 투표에서 6%의 초라한 득표율로 5위에 머물렀다. 프랑스 제5공화국 출범 이후 사회당 후보가 대선 결선 진출에 실패한 것은 2002년 리오넬 조스팽 전 총리가 좌파 후보 난립으로 1차 투표에서 16% 득표로 3위를 기록한 이후 두 번째였다.

글=구성찬 기자 ichthus@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