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대타협’이 수면 위로 급부상했다. 대선 공약에서 ‘한국형 사회적 대화기구’를 강조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격차를 줄여가겠다”며 직접적으로 대타협 추진을 언급하면서다. 새 정부의 최대 국정과제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임금 격차 해소, 근로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 등은 모두 극심한 경제·사회적 갈등을 예고한다. 대타협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모든 현안을 중앙정부가 한꺼번에 합의해 주변으로 전파하는 형태의 대타협으로는 과거의 실패를 반복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큰 틀에서 합의하되, 구체적 실행방안을 두고 노사정 논의가 지속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우리 사회에서 대표적 대타협 경험은 1997년 외환위기 직후 추진됐던 ‘노사정 대타협’이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98년 대통령 자문기구로 경영계와 양대 노총이 참여하는 노사정위원회 1기를 출범시켰다. 그해 2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타협’과 이에 따른 사회협약을 만들어냈다.
문제는 대타협 이후에 불거졌다. 공무원·교사노조의 합법화 대신 정리해고·파견근로제 도입에 합의하면서 민주노총은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민주노총은 이듬해 노사정위를 탈퇴했다. 이 사건은 노동계에 ‘사회적 합의 트라우마’를 남겼다.
상대적으로 ‘대화의 틀’ 안에서 협의해 왔던 한국노총도 박근혜정부 시절 노동시장 구조 개선을 위한 노사정 대타협에 참여했다가 결국 노사정위를 탈퇴했다. 당시 노사정위는 노동시장 내 양극화 해소를 위한 일자리·임금 나누기 등을 추진해 합의문까지 썼다. 하지만 정부의 소위 ‘양대 지침(일반해고·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추진’ 등으로 합의가 깨지면서 노·정 갈등은 증폭됐다. 사회적 대타협의 대표적인 전례가 좋은 결과를 낳지 못한 것이다.
더욱이 현재의 일자리 문제는 단순히 경영계와 양대 노총의 합의로 해결할 수 없는 구조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고령층과 청년층,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으로 문제 원인이 나뉜 데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정부와 노동계에선 민주노총이 18년 만에 노사정 협의기구인 일자리위원회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만큼 큰 틀의 사회적 합의를 추진하되, 세부 현안은 지역·민간이 참여하는 노·사·민·정 협의체 등에서 논의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현안에 따라 각 주체의 입장이 달라지는 상황에서 모든 안건을 올려 놓는 과거 방식의 대타협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 장관에 내정된 조대엽 후보자 역시 정부 주도보다 민간 중심의 사회적 협의를 강조해 왔다.
정부가 일방 추진하기 어려운 법안 등을 통과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사회적 대화를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사정 대화에 참여해 왔던 노동계 인사는 12일 “노동계뿐 아니라 경영계도 사회적 합의를 두려워하는 측면이 있다”면서 “결국 이 합의가 서로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신뢰가 만들어지는 게 중요하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신뢰부터 생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
‘트라우마’ 더 컸던 과거 ‘사회적 대타협’ 이번엔 성공할까
입력 2017-06-13 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