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올해 안에 남북관계가 급진전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북한은 대미(對美)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한동안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 고강도 도발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측 역시 새 정부의 대북 정책이 구체적으로 수립되기 위해서는 적잖은 시간이 필요하다.
‘6·15 남북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을 이행하라’던 북한은 시간이 갈수록 요구 수준을 높이고 있다. 최근에는 지난해 망명한 해외 북한식당 종업원 13명을 돌려보내지 않으면 그 어떤 인도적 교류에도 응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놨다. 우리 정부가 받을 수 없는 조건을 내걸면서 관계 개선 의사가 없음을 우회적으로 전한 것이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12일 “북한은 당분간 대화 준비도 돼 있지 않고 그럴 의사도 없다”며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6차 핵실험과 ICBM 발사까지 목표로 삼고 있다. 북한 나름대로의 자체 스케줄이 있는데 남한이 끼어들어 화해·협력을 얘기하면 내치와 외치에서 불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북한의 미사일 개발은 ICBM 개발 성공이라는 최종 단계만을 남겨두고 있다. 북한은 지난 4월 김일성 생일 105주년 기념식에서 선보인 신형 미사일을 하나씩 발사대에 올리고 있다. 당시 공개한 미사일 중 시험발사가 이뤄지지 않은 것은 ICBM뿐이다. 북한은 관영매체를 통해 “ICBM 발사가 머지않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북한이 실제로 ICBM을 발사하면 남북관계는 상당기간 냉각될 가능성이 높다. 일단 우리 정부는 미국을 위시한 국제사회의 대북 추가제재 움직임에 적극 동참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북측이 강하게 반발하며 우리 정부와의 관계 단절을 선언할 공산이 크다.
특히 북한은 개성공단 확대와 금강산 관광 재개 등 대규모 경제협력에 더욱 관심을 가져왔다. 북한이 6·15와 10·4선언을 이행하라고 주장하는 데서도 그런 기대감이 묻어난다. 하지만 문재인정부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이유로 민간교류만 제한적으로 허용한다는 입장을 밝히자 북한은 실망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의 주장은 첫째 민간교류가 남북관계의 근본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고 둘째는 남한이 외세와의 공조, 즉 대북 압박 공조에서 벗어나 자신들과 민족공조를 하자는 것”이라며 “남측이 이런 부분에서 입장이 정리되지 않았으니 섣불리 나서지 않고 당분간 지켜보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북측은 대신 현재의 남북 간 교착 상황을 주도권 싸움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문재인정부의 제안을 걷어참으로써 남북관계를 자신들이 이끌어가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우리 정부도 이런 기싸움에서는 밀리지 않을 태세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남북이 대화와 교류의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지만 그 기대치에서 차이가 있다. 기싸움이 다소 길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성은 기자
文정부 제안 차버린 北 의도는… 주도권 ‘기싸움’ 나선 듯
입력 2017-06-13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