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독특한 인터넷 문화 중 하나가 리플이다. ‘대답하다’라는 영어 리플라이(Reply)를 줄인 말이다. 리플 중에는 욕설이나 비방하는 글들이 많다. 이런 글을 악플이라고 한다. ‘악(惡)’과 ‘리플라이’가 합쳐진 용어다. 포털 사이트 규정 등을 보면 악의적인 댓글은 타인에 대한 욕설과 비방, 사생활 침해, 개인정보 유출, 저작권 침해, 폭력이나 사행성 조장, 성매매 알선, 음담패설 등이다. 악플러는 주목받는 이슈나 인물에 악플을 다는 성향이 있다. 예전에는 인기 연예인들이 집중 공격 대상이 됐으나 최근에는 일반인에게도 가차 없이 퍼부어진다. 이들은 하지 말라거나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수록 더욱 하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고 한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악플은 도박 중독과 같이 강박적으로 반복하게 되는 중독성이 있다고 진단한다. ‘빨리빨리’로 표현되는 속도 지상주의도 악플을 쏟아내는 한 요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악플에 대한 제재 움직임이 본격화된 것은 2008년 10월이다. 여배우 최진실씨가 이혼 후 악플에 시달렸고 그에 따른 중압감과 우울증을 이기지 못해 자살을 결심했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가 세상을 등진 날에도 인터넷엔 죽은 이를 욕보이는 험담과 욕설이 올라 포털들이 댓글 서비스를 차단해야 할 정도였다.
악플이 다시 사회문제화되고 있다. 호식이 두 마리 치킨 회장에 의해 강제로 호텔 방에 끌려갈 위기에 처한 여직원을 구했던 주부 일행이 ‘꽃뱀 사기단’으로 매도당하면서 수많은 악플에 시달리고 있다. 개인적으로 모은 악플 캡처만 A4용지 100페이지에 달한다. 선행까지 저격하는 악플러도 넘쳐난다. 국민참여재판에선 일반시민으로 구성된 배심원들의 판단을 받아 판사가 악플러에 검찰 구형보다 센 중형을 선고했겠는가. 인터넷이라는 익명의 공간에서 행해지는 인격 말살에 대해 일반인의 시선이 얼마나 엄격한지 보여주는 사례다. 미국 하버드대학은 페이스북에 음란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올린 입학예정자 10여명에 대해 합격을 취소하는 일까지 있었다.
인터넷과 SNS에서 특정인을 겨냥한 비방은 무차별적으로 유통되고 확대 재생산되는 경향이 있다. 악플 앞에서 개인은 철저히 무력한 존재가 된다. 인터넷 실명제, 사이버 수사대 등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사이버 명예훼손에 대한 처벌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성숙한 시민의식이 요구된다.
글=김준동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한마당-김준동] 악플과의 전쟁
입력 2017-06-12 1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