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배병우] 궁지 몰린 트럼프, 더 두렵다

입력 2017-06-12 18:2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식은 지난 1월 20일(현지시간). 대통령이 된 지 5개월이 채 안 된다. 하지만 그로 인한 피로감으로만 치면 5년이 다 된 느낌이다. 그의 언행과 내놓은 조치의 대부분이 ‘파괴적’이라는 데 스트레스의 근원이 있을 것이다. 오바마케어(건강보험개혁법) 무력화 등 내정은 제쳐놓더라도 ‘미국 우선주의’라는 이름 아래 전후 70년 국제질서를 뒤집는 대외관계 역주행을 모른 체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우리들 일상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기에 매번 가슴 철렁 하면서도 살펴봐야 하는 이 고역. 지난 2일 파리기후협약 탈퇴 선언은 한 정점이었다. 대서양 양안의 지성을 대표하는 미국의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와 마틴 울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칼럼니스트가 사전에 입을 맞춘 듯 미국을 ‘불량국가(rogue state)’, ‘불량 초강대국(rogue superpower)’이라 부르며 격한 감정을 드러냈을 정도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를 실은 탄핵 열차가 마침내 시동을 걸었다. 물론 실제 탄핵이 되려면 몇 개의 산을 넘어야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산은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의 조사 결과가 될 것이다. 하지만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의 상원 증언의 구체성과 용의주도한 증거 등을 볼 때 뮬러 특검이 트럼프의 러시아 스캔들 개입이 사법방해죄에 해당한다고 결론내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렇게 될 경우 공화당도 좌시할 수 없을 것이다. 탄핵소추안이 정원의 3분 2 이상 찬성을 얻어야 하는 상원은 몰라도 최소한 하원은 통과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관심은 트럼프의 정치적 위기가 한반도와 동아시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첫째는 레임덕(권력 누수)에 가까운 국정동력 상실에 처해 트럼프가 대외관계는 현상유지와 관리에 주력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 경우 대북정책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때의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로 사실상 복귀할 것이다. 두 번째는 트럼프가 내정에서의 실점을 공세적인 대외정책으로 만회하려 할 것이라는 의견이다. 두 가능성을 모두 열어놓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 사례나 트럼프의 성향을 감안할 때 후자에 더 무게가 실린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 때인 1973년의 칠레 아옌데 정권 전복, 빌 클린턴 때인 1998년 알카에다와 이라크 공격 등이 두 사람의 탄핵 위기와 상당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게 정설이다. 위기에 처한 두 사람이 여론의 관심을 외부로 돌리고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해 ‘도발’을 했다는 것이다.

미국외교협회(CFR)의 미카 젠코 박사는 최근 포린폴리시 기고문에서 똑같은 동기에서 트럼프가 북한 핵시설에 대한 선제공격 유혹을 강하게 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보다 현실적으로는 대북제재 비협조를 이유로 중국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의 기업·개인 제재)을 발동하거나 북한과 대화 병행을 주장하는 문재인정부를 희생양 삼으며 강력한 ‘한국 때리기’를 할 가능성이 있다.

이와 관련해 코미 전 국장이 청문회에서 증언할 때 트럼프가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과 함께 우리 정부의 사드 배치 연기 결정을 논의했다는 발표는 예사롭지 않다. 이는 사드 배치 건이 실무진 수준을 떠나 정상 대 정상, 즉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간 문제로 전환됐다는 신호다. 두 사람의 인간적 공감대를 넓히기 위해 서둘러 정상회담을 추진한 의도와 달리 두 정상이 사드 문제를 놓고 격돌해 첫 단추부터 어긋날 수 있다는 얘기다. 과거 사례를 볼 때 트럼프에 대한 탄핵 절차는 2∼3년이 걸리는 지루한 공방의 연속이 될 것이다. 트럼프 먹구름이 앞으로 한반도에 더욱 짙게 드리우지 않을까 걱정이다.

배병우 편집국 부국장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