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팀' 잉글랜드, 우승컵 품다

입력 2017-06-12 00:31
잉글랜드 선수단이 11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결승전에서 베네수엘라를 1대 0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한 뒤 시상대에 올라 환호하고 있다. 국제대회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던 ‘축구 종가’ 잉글랜드는 무려 51년 만에 FIFA 주관 대회에서 정상에 올랐다. 수원=최현규 기자
잉글랜드 주포 도미닉 솔란케(왼쪽)가 11일 열린 베네수엘라와의 U-20 월드컵 결승전에서 이마가 찢어지는 부상을 당한 뒤 거즈로 지혈하고 있다. 부상 투혼을 펼친 솔란케는 골든볼(MVP)의 주인공이 됐다. AP뉴시스
“팀보다 큰 선수는 없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명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27년 동안이나 지휘했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명언이다. 그는 우승 트로피를 가져오는 것은 특정 선수가 아니라 잘 짜인 팀이라고 믿었다. 잉글랜드 U-20 대표팀은 퍼거슨 감독의 신념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겁 없는 20세 잉글랜드 청년들은 개인플레이가 아니라 탄탄한 조직력으로 2017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정상에 올랐다. ‘축구 종가’ 잉글랜드는 무려 51년 만에 FIFA 주관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기쁨을 누렸다.

잉글랜드는 11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베네수엘라와의 대회 결승전에서 전반 35분 터진 도미닉 칼버트-르윈의 결승골을 앞세워 1대 0으로 이겼다. 잉글랜드가 U-20 월드컵에서 우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령을 불문하고 잉글랜드 축구 대표팀이 FIFA 주관 대회에서 우승한 것은 1966년 월드컵 이후 51년 만의 일이다.

이번 잉글랜드 대표팀은 약체로 분류됐다. 주전 공격수로 활약하던 마커스 래쉬포드(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 주축 선수들이 대거 빠지면서 전력이 약해졌다. 하지만 잉글랜드는 이번 대회에서 트레이드마크인 롱볼이 아니라 조직력을 바탕으로 한 짧고 정확한 패스와 날카로운 측면 공격으로 승승장구했다.

폴 심슨 잉글랜드 감독은 이번 대회 엔트리를 작성하며 개인플레이에 치중하는 선수는 뽑지 않았다. 2승1무로 조별리그를 통과한 잉글랜드는 토너먼트에서도 강한 면모를 보이며 코스타리카, 멕시코, 이탈리아를 잇따라 제압했다. 잉글랜드는 선수들의 풍부한 경험 덕분에 우승컵을 품을 수 있었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잉글랜드 선수 21명은 모두 자국 프로축구팀에 속해 있다. 이들 중 다수가 1군 경기에 출전한 경험이 있다. 경험이 많은 잉글랜드 선수들은 큰 경기에 강했고, 지도 있어도 당황하지 않고 역전승을 거뒀다. 공·수 조화가 좋은 잉글랜드는 조별리그와 토너먼트 7경기에서 12골을 뽑아내면서 3실점에 그쳤다. 심슨 감독은 “이번 대회를 통해 잉글랜드 축구에 대한 인식을 바꾸겠다”고 장담했는데, 그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남미에서 축구 약소국인 베네수엘라는 놀라운 경기력으로 돌풍을 일으키며 첫 우승을 노렸지만 잉글랜드를 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생활고와 반정부 시위로 고통받는 자국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라파엘 두다멜 베네수엘라 감독은 경기 후 “국민들의 열렬한 응원이 약간은 부담됐지만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두는 데 큰 힘이 된 것 같다. 우리 선수들이 자부심을 품고 열심히 뛰었다는 사실을 우리 국민들이 알아 줬으며 좋겠다”며 “마치 우리나라에서 경기하는 것처럼 느끼게 해 준 한국 팬들에게도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앞서 열린 3∼4위 결정전에선 이탈리아가 승부차기에서 우루과이를 4대 1로 제압하고 3위를 차지했다.

잉글랜드 주포 솔란케는 골든볼(MVP)의 영예를 안았다. EPL 첼시 소속으로 이번 대회 전부터 주목을 받았던 솔란케는 대회 도중 리버풀로 이적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솔란케의 활약은 토너먼트에서 빛났다. 그는 조별리그 아르헨티나와의 1차전에서 페널티킥으로 자신의 첫 골을 넣은 뒤 조별리그 나머지 2경기에 침묵했다. 하지만 멕시코와의 8강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렸으며, 이탈리아와의 4강전에서 멀티골을 작성했다.

실버볼은 인종차별 세리머니로 구설수에 올랐던 우루과이의 페데리코 발베르데에게, 브론즈볼은 베네수엘라 주장 앙헬 에레라에게 돌아갔다. 5골을 기록한 이탈리아의 리카르도 오르솔리니는 최다 득점자에게 수여되는 골든부츠를 차지했다. 잉글랜드 골키퍼 우드먼은 골든글러브를 받았다. 한편 이날 이낙연 국무총리와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 등이 경기장을 찾아 선수들을 격려했다. 결승전엔 무려 3만346명의 관중이 입장해 수준 높은 경기를 즐기며 뜨거운 응원을 보냈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