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논문 설문조사비 수십만원… 대학원생 ‘한숨’, 대학 ‘나 몰라라’

입력 2017-06-12 05:00

경영학과 석사학위 논문심사를 한 학기 앞둔 대학원생 이모(29·여)씨는 요즘 마음이 무겁다. 한 학기 앞서 학위를 받은 같은 과 선배가 “설문조사비로만 70만원을 썼다”고 귀띔해줬기 때문이다. 등록금, 논문심사비, 연구등록비까지 수백만원을 혼자 마련해야 하는 이씨에게 70만원은 적잖은 부담이다. “졸업은 해야 하니까 어쩔 수 없다”고 각오하고 있지만 돈을 마련할 방법을 궁리하다 보면 한숨만 나온다.

논문심사 시즌을 맞아 인문계 대학원생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 설문조사 비용 때문이다. 사회과학이나 경영학 심리학 등 인문계 분야 학위논문에는 대부분 설문조사가 필요하다.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최모(25·여)씨는 지난 4월 석사학위 논문에 쓸 설문조사를 하면서, 답을 해준 이들에게 1300원짜리 편의점 바나나우유 쿠폰을 돌렸다. 총 400명에게 응답지를 받고 52만원을 썼다. 이번엔 싸게 막은 편이다. 설문 문항이 많으면 2000원 넘는 카페 기프티콘까지 줄 때도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5년 189개 대학 대학원생 1906명을 상대로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재학 중 겪는 어려움으로 경제 문제를 꼽은 이들이 56.5%로 가장 많았다. 대학교육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5월 기준 전국 사립대 대학원(인문 자연 공학 예체능 의학)의 한 학기 평균 등록금은 석사과정 525만원, 박사과정 521만원이다. 교재비, 논문심사비, 연구등록비까지 합하면 액수는 더 커진다. 인문계 전공자들은 여기에 수십만원의 설문조사비까지 부담해야 하는 형편이다.

아예 전문 설문조사 업체를 찾아가는 이들도 있다. 설문 대상자를 찾느라 발품을 들일 필요도 없고 설문 문항 숫자에도 신경 쓰지 않고 넉넉히 설문지를 만들 수 있다. 이때도 문제는 비용이다. 서울 한 사립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이모(33)씨는 100만원을 들여 석사 학위논문을 위한 설문조사를 전문 업체에 맡겼다. 이씨는 “부모님께서 지원해 주셔서 업체에 맡겼다”며 “덕분에 시간을 아껴 논문을 쓰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학위 논문은 연구자 개인만 아니라 소속 학교의 재산이기도 하다. 논문의 수준이 대학의 수준과 직결된다. 대학들은 등록금과 논문심사비까지 받으면서 논문을 위한 지원에는 인색하다. 서울 한 유명 사립대 관계자는 “석사 논문 작성 때 학교가 학생에게 지원하는 금액은 없다”고 했다. 또 다른 대학 관계자도 “학생마다 논문 주제도 분량도 다르기 때문에 지원은 어렵다”고 밝혔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한국에서 경영학과 사회학 연구는 설문조사를 많이 활용한다”며 “논문이 대학과 국가 차원의 지적 생산물로 여겨져야 하는데, 지금은 대학원생 개인의 생산물로 취급돼 비용 부담이 학생에게만 전가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배규한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미국은 대학원생이 학내 연구 센터에 요청하면 지원한다”며 “앞으로는 대학원생에 대한 장학금이 학교나 사회 차원에서 지원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배 교수는 “지원이 없어 학생들이 시간을 낭비하고 감정노동을 하는 현실은 비극”이라고 덧붙였다.

글=손재호 오주환 기자 sayho@kmib.co.kr, 삽화=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