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등장이다. 동유럽의 소국 라트비아에서 온 옐레나 오스타펜코(사진). 그는 시드도 받지 못한 채 프랑스오픈 테니스대회에 겁 없이 뛰어들었다. 20세 무명인 그에게 눈길을 준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오스타펜코는 춤을 추듯 날렵한 풋워크로 코트를 누비며 쟁쟁한 강호들을 연파했다. 결승전에선 우승 후보를 제압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세계 여자 테니스계는 ‘신데렐라’의 등장에 환호했다.
세계랭킹 47위인 신예 오스타펜코는 1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롤랑가로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프랑스오픈 여자 단식 결승에서 루마니아의 테니스 스타 시모나 할레프를 2대 1(4-6 6-4 6-3)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세계랭킹 4위이자 2014년 프랑스오픈 준우승자였던 할레프가 1세트를 가져갔을 때만 해도 우승 후보 1순위의 무난한 승리로 끝날 것으로 보였다. 오스타펜코는 2세트도 0-3으로 끌려가다 특유의 강력한 공격을 앞세워 6-4로 뒤집고 2세트를 따냈다. 이후 오스타펜코는 파상공세를 퍼부어 할레프를 압도하며 3세트를 잡으면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오스타펜코는 포 핸드샷 평균 속도가 시속 122㎞에 달할 정도로 매서운 공격이 강점이다. 지난해 리우올림픽 테니스 남자 단식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앤디 머레이(영국)보다 빠른 수준이다.
오스타펜코는 라트비아 출신으로 프랑스오픈 첫 우승자가 돼 고국 라트비아에서 일약 스포츠 스타가 됐다. 1997년 프랑스오픈 남자 단식 우승자였던 구스타보 쿠에르덴(브라질) 이후 20년 만에 자신의 투어대회 첫 우승을 메이저대회에서 기록한 선수가 됐다. 또 프랑스오픈에서 시드를 받지 않은 선수로 우승을 한 것은 1933년 마가렛 스크리븐(영국) 이후 84년 만이다.
우크라니아 축구팀에서 골키퍼로 뛴 아버지와 테니스 선수 출신 어머니에게 운동 신경을 물려받은 오스타펜코는 볼룸댄스에도 재능을 보였으나 17세 때인 2014년 윔블던 주니어 여자단식에서 우승을 차지한 후 테니스에만 오롯이 집중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오스타펜코는 “처음엔 볼룸댄스와 테니스를 병행했으나 (윔블던 우승 이후)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스포츠가 테니스임을 확신했다. 볼룸댄스는 테니스 풋워크에 많은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오스타펜코의 부모는 운동선수로서의 재능을 물려줬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는 피트니스 트레이너로, 어머니는 코치로 딸을 직접 지도하며 물심양면으로 우승을 도왔다.
한편 오스타펜코가 기존 여자 테니스계를 주름잡던 스타들을 대신할 수 있을지도 관심이 모아진다. 세계랭킹 1위 ‘여제’ 서리나 윌리엄스(미국)는 임신과 곧 있을 출산 때문에 휴식에 들어간 상태다. 러시아 테니스 스타 마리아 샤라포바는 지난해 1월 금지 약물 양성 파동 이후 올 4월 복귀했으나 허벅지 부상으로 오는 7월 열리는 윔블던대회 불참을 선언했다. 기존 강자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 오스타펜코가 이번 우승의 여세를 몰아 새로운 스타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이상헌 기자
20세 무명, 롤랑가로스 코트 점령… 佛오픈 테니스 여자 단식 제패
입력 2017-06-11 19:04 수정 2017-06-12 09: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