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법개혁 시대적 요구이나 정권이 주도해선 안 돼

입력 2017-06-11 17:17
판사들의 사법 개혁 요구가 거센 가운데 대법관추천위원회가 12일 열릴 예정이라고 한다. 지난 2월 퇴임한 이상훈 전 대법관과 지난 1일 임기를 마친 박병대 전 대법관 후임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다. 추천위는 회의를 통해 지난달 확정된 36명의 후보자를 검토한 뒤 5∼6명을 추려 대법원장에게 추천할 계획이다. 대법원장은 이 가운데 최종 후보자 2명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제청하게 된다.

이번 대법관 인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고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새 정부 들어 법원에 거대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상황에서 사법부 전체의 흐름을 가늠해볼 수 있는 바로미터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다. 문 대통령 재임 기간 중 바뀌는 대법관은 전체 14명 중 13명이다. 양승태 대법원장도 9월 임기가 끝난다.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과 국회 동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사실상 대통령이 영향력을 행사한다. 헌법재판소 재판관도 새 정부에서 9명 중 8명이 교체되는데 이 중 문 대통령이 직간접적으로 임명할 수 있는 대상이 5명이다. 사법 권력 구조가 바뀔 가능성이 크다.

문 대통령은 검찰 개혁에 이어 사법 개혁에도 서서히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진보 성향의 김이수 재판관을 헌재소장으로 지명했고, 사법 개혁을 주장하는 김형연 판사를 청와대 법무비서관에 기용했다. 청와대는 김 비서관 발탁 배경에 대해 “대법원장 권한 분산, 법관 독립성 등 사법제도 개혁에 대한 의지가 남다르다”고 했다. 사법 개혁을 청와대 중심으로 이끌겠다는 의중이 담긴 것으로도 풀이된다. 이런 상황에서 19일에는 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예정돼 있다. 판사들은 사법부의 독립 보장과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과거 네 차례에 걸쳐 일어났던 소장 판사들의 집단행동인 사법파동을 연상시킨다.

사법 개혁은 시대적·국민적 요구다. 핵심은 사법부의 정치적 독립과 법원 구성의 다양화에 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헌법적 가치인 법관의 독립이 훼손돼서는 안 된다. 진보정부가 들어섰다고 진보 성향 인물들만 앉히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법부의 폐쇄주의와 권위적 인사문화 등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사법부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은 이루어져야 마땅하다. 하지만 정치권력이 주도하는 방식은 법의 안정성을 해치고 이념 편향성 논란을 부를 수 있다.

법조계를 중심으로 대통령으로부터 사법기관의 다양성을 담보할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대법원장이 좌지우지하는 현행 대법관추천위원회를 독립된 추천위원회로 혁신하는 방안도 검토돼야 한다. ‘남성·서울대 법대·판사 출신’으로 대변되는 대법관 순혈주의에서도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사랑하는 사법부로 거듭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