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부터 새로워지겠습니다] 평생 가르침이 된 아버지의 용서

입력 2017-06-12 00:04

초등학교 시절입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두 길이 있지요. 대개는 ‘자빠산 털목고개’ 넘고 개울을 건너는 지름길로 다니지만 닷새 장이 서는 날은 읍내 장텃거리를 거칩니다. 떡 장사 하시는 엄마를 비롯해 풀빵과 눈깔사탕을 파시는 마을 아주머니들 눈에 띄면 군입거리가 생기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잔뜩 찌푸린 겨울날 그 흥청거리는 장터에 들어섰습니다. 낮술에 취한 엿장수 아저씨가 장 보러 나온 손님들과 엿치기를 벌이다 시비가 붙었습니다. 왁자한 소란 속에 주인 관심 밖에 서 있는 엿목판에 쉬 눈이 닿았습니다. 콩엿, 깨엿을 한 움큼씩 집어 들도록 주인은 취중쟁론으로 엿 목판에 여전 무관심입니다.

눈 맞은 친구들끼리 세 번째 탐욕의 손길을 뻗는 순간, 섬광 같은 눈동자랑 마주쳤습니다. 아버지셨습니다. 회색 광목 두루마기에 중절모를 눈썹까지 내려쓴 구척장신 아버지의 얼큰 취하신 눈동자에 정확히 들키고 말았습니다. 전기에 감전된 듯 웅크린 건 잠깐이고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번개보다 빨리 장터거리를 튕겨 나왔습니다. 자빠산 중턱, 왕소나무 아래 닿아서야 허리춤에 맨 책보에서 도시락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출필고 반필면(出必告反必面)”에서 시작되면 “부명소 유이불락 식재구즉토지(父命召 唯而不諾 食在口則吐之)”로 이어지는 긴 훈화와 목침 위에서 맞는 종아리까지 엄한 양반 교육을 최고 가치로 여기시는 아버지께 도둑질을, 그것도 정면으로 들켰으니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찌푸렸던 하늘은 함박눈을 쏟아 붓습니다. 소나무 아래 쪼그렸던 친구들이 하나씩 떠나고 홀로 남습니다. 외로우니 더 춥습니다.

산 아래 마을에는 저녁 짓는 연기가 정겹더니 하늘은 금세 어두워져 무섭습니다. 발밑은 더 시리고 해 지는 추위는 뼈 속까지 파고듭니다. 어쩔 수 없는 결심을 합니다. ‘소나무 밑에서 얼어 죽으나 집에 들어가 맞아 죽으나 마찬가지다.’

도둑고양이처럼 사립문 닿으니 밥 냄새 구수한 안방에는 호롱불이 희미합니다. 이판사판 용기를 가늠하느라고 깊게 들이마신 호흡을 막 내뱉는 순간, 기중기 같은 음성이 뒷덜미를 낚아챕니다.

“어이 자네는 새끼가 나가 안 들어오면 사립 마중이라도 할 일이 아닌가. 새끼 하나 얼려 죽일 뻔했네 그려!” “냅둬요. 고놈 낮에 장터거리서 말질(말썽질) 한 모양이더구먼”

아버지 어머니 주고받는 말씀이 꿈결인 듯싶고 참새처럼 웅크린 나는 아랫목 이불 속으로 구겨졌습니다.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모르게 새 날이 밝았습니다. 도둑고양이 사람 피하듯 살금살금 책 보따리 싸들고 도망 나오는 발길에 아버지는 물푸레나무 회초리만큼 굵은 엿 한 뭉치를 건네 주셨습니다.

“이 엿 너 먹어라. 그리고 이눔아! 양반은 굶어 죽어도 그러는 거 아니다.”

그 걸걸한 용서를 경험한 이래, 한 평생 사는 동안 남의 것을 손대 본 적 없습니다. 용서가 훈육이 아니라 감동으로 경험된 까닭이라고 믿습니다. 그 경험이 가르친 대로 나도 내게 주어진 사람들을 그렇게 섬기렵니다.

이재정 목사(익산 삼광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