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례적인 ‘여름 조류인플루엔자(AI)’ 창궐은 방역체계에 허점이 많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준다. 문재인 대통령이 8일 “AI 대책이 의례적인 것으로 보인다”고 발언한 것도 이 구멍을 메우지 못하고 있음을 질책한 것이다. 사실상 ‘AI 상시 발생국’이 된 현재 상황에서 방역 당국이 고민해야 할 지점은 크게 3가지다. 전통시장을 거쳐서 유통되는 가금류의 이력 추적, 신고가 없으면 속수무책인 방역체계, 그리고 바이러스의 변이 여부 점검이다.
전통시장 거쳐 2, 3차 유통 ‘깜깜이’
이번 AI 확산의 매개체는 방역 당국이 그동안 간과해 왔던 전통시장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최초 고병원성 AI 확진 사례가 나온 제주도의 경우 전북 군산 종계농가에서 제주도 유통상인의 농가 2곳을 거쳐 전통시장으로 온 가금류가 문제였다. 이후 발생한 확진 사례도 전통시장을 거쳤다. 문제는 전통시장에서 문제의 가금류를 사들인 이들이 다시 유통하면서 감시망에서 사라졌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농식품부는 군산 종계농가에서 판매한 가금류의 이동·유통경로를 100% 추적하지 못하고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대부분 파악이 되기는 했지만 일부 추가 유통된 가금류가 있어 신고를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고 없이는 예방이 힘든 상황도 문제다. 수천 마리를 기르던 군산 종계농가의 경우 지난 4월부터 폐사 등 AI 징후가 있었다. 하지만 방역 당국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지난달 31일 AI 위기경보 단계를 ‘평시’로 낮추며 사실상 ‘AI 종식’을 선언했지만 한쪽에서는 잔존한 AI 바이러스가 퍼져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전통시장을 거쳐 2차와 3차로 유통된 가금류도 신고 없이는 찾을 수 없었다. 수십 마리를 키우는 소규모 농가는 더욱 방역·감시망에 잡히지 않는다. 농식품부는 AI 확산 사태가 심각해지자 가축 사육시설 10㎡ 미만 소규모 농가도 축산업 등록 대상으로 확대하겠다고 나섰다.
바이러스 변이 여부도 무시 못해
전문가들은 AI가 2014년부터 지금까지 여름철에만 세 번째 발병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AI 바이러스의 ‘토착화’를 의심하는 것이다. 토착화했다면 AI 바이러스가 우리나라 환경에 맞게 변이했을 가능성이 크다. 공구 한양대 의대 교수는 “AI 바이러스는 보통 25도가 넘으면 살지 못한다. 유전체뿐만 아니라 유전자까지 검사해보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바이러스 변이 가능성 등을 반영한 방역 대책 마련은 지지부진이다. 농식품부는 이달 말까지 지방자치단체의 가금류 사육 제한 명령권을 포함하는 방역대책을 마련한 후에나 보건의료계와 변이 가능성 등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당장은 기존 방식대로 AI 확진 시 가금류 살처분 등을 하는 게 전부다. 이러는 동안 확진과 살처분은 늘고만 있다. 9일 현재 전국 12곳의 농가에서 고병원성 AI가 확진됐고 이날 오후 7시 기준 142개 농가에서 18만2000마리가 살처분됐다.
세종=신준섭 정현수 기자 sman321@kmib.co.kr
의례적 대책 비웃는 AI… ‘3가지’를 고민해야 이긴다
입력 2017-06-11 1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