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항쟁 30주년] “한열이 형은 언제나 제 삶의 기준점이에요”

입력 2017-06-10 05:00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낸 1987년 6월 민주항쟁이 30주년을 맞았다. 국민일보는 항쟁 현장에 있었던 인물을 만나 당시 상황과 30년이 지난 현재에 던지는 의미를 들었다.

조세현(30·사진)씨는 이한열장학회 1호 장학생이다. 그는 연세대 상경대 학생회장이던 2008년 21주기 추모제 기획단장을 맡으면서 이한열 사건을 제대로 알게 됐다. ‘한열이 형이 지금 살아있다면 무슨 얘기를 할까’라는 주제로 행사를 준비하며 분주하게 오가던 그를 이한열씨의 어머니 배은심씨가 눈여겨봤다. 추모제를 마친 뒤 배씨는 조씨에게 다가가 “장학금의 첫 회는 네가 받아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열이 형은 역사 속 위인처럼 보였어요. 어려운 사람이었죠. 그런데 추모제를 준비하고 어머니(배씨)와 누님을 자주 뵙게 되니까 이젠 형, 선배 같아졌어요.”

법을 공부하게 된 것도 이 열사 때문이었다. 자기 앞가림이 우선이었던 그는 추모제를 준비하면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는 ‘견현사제’(見賢思齊·현인을 보고 그와 같이 되려고 생각함)라는 사자성어로 자신과 이 열사의 관계를 설명했다. “한열이 형은 언제나 저에게 닮고 싶은 사람이자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지를 물어볼 수 있는 기준점이에요.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1987년에 태어난 조씨는 사회와 자신이 함께 성장해 나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6월 민주항쟁으로 형식적인 민주주의는 갖췄지만 실질적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일은 아직 진행 중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지난겨울 광화문을 수놓았던 촛불집회에도 그는 참여했다.

조씨는 “87년부터 증폭된 민주화 혹은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이 (촛불집회에) 되살아난 것”이라며 “촛불집회에 참여한 일을 계기로 시민들이 정치에 관심이 높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조씨는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노동자 권리를 보호하는 법조인을 꿈꾼다. 그가 로스쿨에 진학한 데도 이한열 사건이 큰 영향을 끼쳤다. 6월 민주항쟁 이후 노동자대투쟁이 이어졌지만 아직 문제가 산적해 있다. 조씨는 “민주화를 상징하는 여러 지표가 있지만 노동문제 해결이 병행돼야 내실을 채울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