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놀라게한 운보 김기창 ‘예수의 생애’

입력 2017-06-12 05:03
운보 김기창 화백이 6·25전쟁 중 피란지에서 그린 ‘아기 예수의 탄생’. 서울미술관 제공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연방대통령이 지난 4월 12일 열린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전시회 ‘한국-기독교 부흥의 땅’ 개막전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는 모습. 서울미술관 제공
“만약 예수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이렇게 갓을 쓰고 흰 두루마기를 입었겠지요.”

운보 김기창(1913∼2001·사진) 화백의 ‘예수의 생애’ 전작이 독일 문화계를 깜짝 놀라게 하고 있다. 신약성경의 주요 장면들을 30점의 화폭에 압축적으로 담은 이 전작은 독일연방정부의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루터 이펙트 기획전’에 초청돼 4월 12일∼11월 5일 독일역사박물관에서 전시 중이다. 주요 섹션인 ‘한국-기독교 부흥의 땅(Korea―Boom Land of Protestantism)’에 전시돼 한국 개신교의 전파 과정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서울미술관(이사장 서유진)에 따르면 ‘루터 이펙트 기획전’은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 등 유력인사가 대거 참석하는 등 독일에서 범국가적인 행사로 개최됐다.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개막 당시 “한국 기독교의 전파와 한국 미술의 저력을 동시에 그림으로 만나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밝히기도 했다.

‘예수의 생애’는 기독교가 토착화를 드러내는 한국적 성화로 가치가 높다. 빠르고 부드러운 운필과 뛰어난 구성력 등 운보의 회화적 성취를 보여준다. 조선시대 복색의 인물들과 전통 한옥이 세필로 묘사돼 생생한 느낌의 풍속화를 연상시킨다.

한국 미술사에서도 큰 의미를 갖는 ‘예수의 생애’는 청각장애를 예술로 승화시킨 운보의 대표작이다. 운보는 한국전쟁으로 온 국민이 고통 받던 시기에 1년(1952∼53) 동안 온 힘을 다해 29점을 그렸다.

당시 전쟁의 암운을 피해 아내의 고향인 전북 군산으로 피난 갔던 운보는 예수의 고난이 우리 민족의 비극과 유사하다는 것을 깨닫고 한국적 성화를 그리기로 결심했다. 마침 친분이 두터웠던 미국 선교사의 권유도 더해졌다. 운보는 ‘예수의 성체가 꿈에도 보이고 백주에도 보였다’고 할 정도로 작품제작에 몰입했다.

이 연작은 1954년 4월 서울 종로 화신백화점에 있는 화신화랑에서 첫 전시를 했다. 이때 독일의 한 신부가 ‘다 좋은데 예수의 부활 장면이 빠졌다’며 1점 더 그리기를 권하자 운보도 고개를 끄덕였다. 3년 뒤 운보는 ‘부활’을 완성해 화룡점정을 찍었다.

서유진 서울미술관 이사장은 “독일정부 초청을 받은 것은 개관 5주년을 맞이한 서울미술관에게 뜻 깊은 일이자 한국 미술계에도 반가운 소식이라 감회가 새롭다”면서 “독일역사박물관의 전시 종료 후 한국에서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관람객에게 다시 전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