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하면 나는 산에 간다. 아웃도어용 의자를 배낭에 넣어 가서 그늘 아래 펼치고 앉아 풀과 나무와 구름을 찬찬히 본다. 그러면 딱딱했던 뇌가 서서히 말랑말랑해진다. 어느 순간 “이거다” 하고 머리에 전등이 켜진다. 오랫동안 상담했던 어떤 사장님은 동네 뒷산 나무 기둥에 해먹을 걸고 누워 있는 게 취미다. 공황장애를 앓고 있었는데, 나무를 벗 삼아 일요일을 보내면 주중에는 웬만큼 스트레스 받아도 증상이 악화되지 않았다. 자연은 그에게 천연의 안정제였다.
사람들은 듬성듬성 흩어진 수풀과 나뭇가지 우거진 몸통 굵은 나무를 좋아한다. 이런 선호 현상을 일컬어 ‘사바나 가설’이라고 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인류의 조상이 거주하던 아프리카 동부와 비슷한 환경에 끌린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이다. 자연에 대한 사랑, 바이오필리아(biophilia)를 누구나 갖고 있다. 자연과의 접촉을 잃어버리면 마음은 병든다. 자연과 친밀해지면 스트레스가 줄어든다. 우울증과 불안장애도 예방할 수 있다. 도시인의 정신건강이 점점 나빠지는 건 자연이 결핍된 환경 탓이기도 하다.
바빠서 공원 갈 시간이 없다면? 약한 체력 탓에 뒷산 오르기조차 힘겹다면? 그저 눈으로 자연을 음미하면 된다. 자연 풍경 사진을 10분 동안 본 뒤에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문제를 풀게 하면, 긴장이 덜하다. 망막을 거쳐 뇌에 도달한 자연 이미지가 부교감신경계를 자극해 몸과 마음을 이완시키는 게 이유다. 수술 후 병실에 누워 창밖으로 풀과 나무를 볼 수 있는 환자는 병실 벽만 보는 환자보다 회복이 빠르고 통증도 덜 느낀다. ‘사이언스’에 실린 유명한 연구 결과다.
슈즈트리가 9일간의 전시된 뒤 철거됐다. 작품에 담긴 도시 재생의 메시지는 현대인이 새겨들어야 할 교훈이다. 그런데 슈즈트리를 두고 흉물 같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그 이유를 심리로 풀어보면, 자연 결핍증에 시달리는 도시인이 3만개의 폐신발과 폐타이어로 이뤄진 시커먼 형상에 본능적인 거부반응을 보인 것이리라. 비타민 부족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채소와 과일은 찔끔 주고 패스트푸드만 잔뜩 가져다준 꼴이니, 몸과 마음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거다.
김병수(정신과 전문의)
[감성노트] 바이오필리아와 슈즈트리
입력 2017-06-09 1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