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인인 두 장애인을 만나기 위해 경기도 안산의 한 재활요양병원을 찾았다. 지체장애인 20여명이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병원 의료진은 치료일정을 소화하느라 분주했다. 운동치료를 마치고 나오던 지인 A(27·지체장애 1급)씨는 반가운 미소로 맞아줬다. 2인 1실의 병실 한 편에선 귀에 익은 찬양이 흘러나왔다. 함께 병실을 쓰는 환자가 스마트폰으로 틀어 둔 음악이었다. A씨의 병상 머리맡엔 손글씨로 적은 성경구절이 붙어 있었다. “네가 희망이 있으므로 안전할 것이며 두루 살펴보고 평안히 쉬리라.”(욥 11:18)
A씨는 ‘병실 동기’를 “6개월째 같이 생활하고 있는데 서로 공통점이 많아 평생친구가 될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작업·재활·운동 치료는 이를 악물고 땀을 흘려야 할 정도로 힘들다. 이런 치료를 하루 4∼5개씩 받으며 고된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만 두 사람에게 우울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어제보다 조금 더 익숙하게 휠체어에서 침상으로 몸을 옮길 수 있게 됐음에 감사하다며 서로를 격려하고 있었다. 두 사람에게선 신앙이란 공통분모가 주는 안식과 감사, 희망이 느껴졌다.
같은 날 A씨와 마주보고 있는 병실에서 지인 B씨(29·지체장애 1급)를 만날 수 있었다. 같은 크기와 구조의 공간이었지만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막 재활치료를 마치고 돌아온 B씨는 내게 짧게 인사를 건네고는 병상에 몸을 뉘였다. 멍하니 천장을 응시하던 그는 “이번에 바뀐 치료사가 실력이 없어 호전이 없다” “병원 음식이 맘에 안 든다” “주치의가 날 무시하는 것 같다” 등등 불만을 토해냈다. 잠시 후 병실에 들어온 또 다른 환자는 수화기 너머로 거친 욕을 쏟아냈다. B씨는 “저 사람은 보험금 문제로 만날 보험사 직원과 싸운다”며 “안 그래도 나보다 불만이 많은 사람인데 돈 얘기만 나오면 아무도 못 말린다”고 귀띔했다.
지난달 ‘기적을 품은 아이들’ 취재차 만난 김민재(12)군은 지적장애(1급)와 뇌병변장애(6급)를 함께 앓고 있었다. 소변을 가리는 것도, 혼자 숟가락을 드는 것도 힘든 상황이지만 김군의 집엔 따뜻한 기운이 가득했다. 어머니 최정화 집사는 “1억원 넘는 치료비 때문에 집을 팔고, 이혼의 아픔을 겪은 뒤 생계를 위해 밤낮 없이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을 때도 말씀이 주는 힘으로 버틸 수 있었다”며 현관 위에 붙여 둔 성경말씀을 가리켰다. 마가복음 21장 22절이 눈에 들어왔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최근 방문했던 아프리카 르완다의 한 마을에선 평생을 시각장애인으로 살아가며 두 아들을 키우는 어머니에게서 신앙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3㎡(1평)가 채 되지 않는 집에서 3달러로 한 달을 살아야하는 힘겨운 삶이었지만 세 식구는 한국에서 온 손님의 기도에 감사의 마음을 담아 찬양을 불러줬다. 이들에게 닥친 고난의 크기를 가늠해 보려했던 시도가 부끄러워질 만큼 신앙은 이 가정이 삶을 지탱할 수 있는 힘이 돼주고 있었다. 장애가 당사자와 그 가족들에게 불편함을 주고 삶을 고되게 만든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불만, 비난 등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장애가 또 다른 누군가에겐 넘치는 감사와 위로를 줄 수 있음도 사실이다. 그 감사와 위로의 현장엔 말씀과 찬양이 있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안녕? 나사로] 신앙의 힘
입력 2017-06-10 0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