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부와 재계, 노동 현안 놓고 치열하게 토론하라

입력 2017-06-08 18:39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역할을 하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늦게나마 대한상공회의소와 중소기업중앙회를 찾아 현장의 목소리를 들은 것은 잘한 일이다. 국정기획위는 지난달 출범 당시 ‘완장 찬 점령군’이 되지 않겠다더니 경총 부회장의 이유 있는 항변을 비판하고 일부 부처의 업무보고까지 거부하면서 불통 논란을 자초했다. 기업들을 대변하는 경제단체가 정부 정책에 쓴소리도 못 하는 것은 민주국가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최저임금 1만원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은 문재인 대통령의 노동 공약이다. 공약은 국민들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지키는 게 옳다. 하지만 기업들의 현실적 문제점을 외면한 채 일방통행식으로 밀어붙인다면 역효과가 날 수밖에 없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8일 “큰 그림으로 보면 너무 이르다는 생각이 든다”며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방안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중소기업인들은 근로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고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상공인·자영업자 단체들도 일자리위원회와 간담회에서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해 “소상공인들에게 임금을 지불할 능력이 충분하다면 마다할 이유는 없다”면서도 “시간적인 여유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고 했다. 새겨들어야 할 지적들이다.

정부가 현장의 고충을 듣고 정책에 반영하는 것은 당연하다. 노동계와 경영계가 첨예하게 맞서 있는 갖가지 현안들에 대해 일방의 주장만을 수용하거나 “재벌들이 압박으로 느낀다면 느껴야 한다”며 옥죄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해선 곤란하다. 일자리 문제는 업종별 특성이나 개별 기업의 상황이 다른 만큼 무 자르듯 획일적으로 재단할 문제가 아니다. 자회사를 설립해 협력업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흡수하려던 SK브로드밴드가 협력업체 사장들로부터 중소기업 인력을 빼간다고 제소당한 사례나 정규직 전환이 안 된 쿠팡 배달기사들이 청와대에 민원을 제기한 사례 등이 이를 방증한다.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을 놓고도 아르바이트생이 편의점이나 치킨집 업주보다 더 많은 월급을 받아가게 되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렇게 되면 아르바이트 일자리가 줄어 선의로 시행한 최저임금 인상 정책이 독이 될 수도 있다. 정부와 재계는 실현 가능한 해법을 논의하면서 합의점을 찾아가야 한다.

기업들은 정부의 일자리 정책에 협조할 책무가 있다. 청년 4명 중 1명이 놀고 있을 정도로 실업난이 재난 수준이다. 수조원의 이익을 내면서 대주주 배만 불리고 양극화를 방치한다면 기업의 지속 성장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도, 사회적 양극화를 해결하는 것도 결국 기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