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은 ‘길 만드는 여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서울의 기자 생활에 지친 그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돌아와 나이 오십에 만든 도보여행길이 제주올레다. 제주도 해변을 따라가며 옛길을 살려내 이어붙인 제주올레는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 됐다. “제주 여행의 패러다임을 바꾼 길”이라는 평을 듣는 제주올레는 길이 가진 힘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보여준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역사에 남을 만한 길을 만든 인물이다. 4대강 정비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의 강을 파헤치는 대공사를 벌여 물길을 만들었다. 골프나 치면서 편안한 퇴임 후를 누리던 전직 대통령은 요즘 밤잠을 설치고 있을 듯하다. 새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가 4대강 사업에 대한 전면 재조사를 벌인다고 하니 말이다. 전국의 강을 망쳐놓았다는 비판과 잠 못 이루는 전 대통령의 이미지는 길을 만드는 일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알려준다.
‘길 만드는 사람’ 목록을 만든다면 두 사람 다음으로 박원순 서울시장을 올려볼 만하다. 박 시장은 도시에 길을 낸다. 그가 만드는 길은 사람이 걷는 보행길이다. 2012년 ‘보행 친화 도시’를 선언한 후 서울시내에 100곳이 넘는 보행전용거리를 만들었고, 기회만 생기면 차선을 줄이는 ‘도로다이어트’를 하고 있다. 그는 차도를 줄이고 끊어진 길들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서울의 보행로를 늘리고 있다. 오랫동안 자동차가 주인 노릇을 해오던 서울의 도로 풍경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지난달 개장한 ‘서울로 7017’(이하 서울로)은 박 시장이 만든 가장 대표적인 길이다. 서울로는 공중보행길이자 공중정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서울을 자동차도시에서 보행도시로 전환하겠다는 박 시장의 메시지를 표현한 거대한 공공미술 작품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런 눈으로 서울로를 보자면, 차도와 빌딩이 밀집한 도심 한복판 위로 생겨난 그 산책로는 현실의 길이라기보다 동화 속에 나오는 길처럼 느껴진다. 또 그 아래 자동차로 가득한 도시 현실에 대한 비판으로, 이 도시의 미래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묻는 질문으로 읽히기도 한다.
개장 이후 서울로를 놓고 다양한 얘기가 나오고 있다. 여러 문제점이 노출된 것도 사실이고, 투신 사고도 벌어져 안전에 대한 우려도 있다. 그렇지만 서울로가 던지는 메시지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서울을 이대로 자동차도시로 내버려 둬야 하는가, 보행도시가 서울의 미래가 될 수 있는가, 그런 것들에 대해서 더 얘기할 필요가 있다.
서울로는 가장 박원순다운 길이기도 하다. 박 시장은 서울을 혁신하는 과정에서 ‘도시재생’과 ‘보행도시’를 양대 키워드로 사용해 왔는데, 이 둘이 드라마틱하게 결합된 사례가 바로 서울로다. 동네를 살리기 위해서는 길을 살리는 게 중요하고, 길을 살리면 사람들이 모여들어 동네가 살아난다는 게 박 시장과 서울시의 믿음이다. 서울로는 그 믿음을 전하고자 한다.
박 시장은 서울역 고가에 이어 광화문광장을 리모델링해서 보행광장으로 바꾸려고 한다. 광화문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율곡로와 세종로를 지하화하고 차도 상부 전체를 광장화하는 안을 연내 확정해 내년 착공한다는 계획이다.
종로도 보행거리로 변신 중이다. 서울시는 8월 종로에 중앙버스전용차로를 개통하면서 동대문 사거리에서 세종대로 사거리에 이르는 동서 2.8㎞ 구간의 현행 8차선 차도를 6차선으로 줄인다. 대신 양쪽의 보도는 폭을 최대 10m까지 확장한다. 서울시는 이 구간을 주말에 차 없는 거리로 운영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서울역에서부터 광화문을 지나 종로까지 서울의 도심부 전체에서 자동차가 밀려나고 시민들이 활보하게 된다면 이 도시의 풍경과 시민들의 삶은 좀 달라질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그리고 서울 도심에 만드는 ‘박원순의 길’이 ‘서명숙의 길’과 ‘이명박의 길’ 사이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지도 궁금하다.
김남중 사회2부 차장 njkim@kmib.co.kr
[세상만사-김남중] ‘서울로’는 메시지다
입력 2017-06-08 17:54 수정 2017-06-08 2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