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남대문∼명동∼종각 일대는 한국의 대표 금융가(街)다. 수많은 은행이 명멸해간 이 지역에서 은행들이 자신의 이름을 거리에 새겨넣는 ‘네이밍 마케팅’을 본격화하고 있다. 지하철 역명 병기, 지하철 출구 안내, 버스정류장 명칭 등을 놓고 벌이는 이른바 ‘이름 전쟁’이다.
SC제일은행은 지난 2일부터 서울지하철 1호선 종각역 뒤에 ‘(SC제일은행)’ 명칭을 병기하는 계약이 발효돼 현재 역 이름 교체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8일 밝혔다. 앞으로 3년간 종각역 안팎의 승강장 역명과 역 구내 및 전동차 내부 노선도, 전동차 하차 음성 방송 등에 SC제일은행 명칭이 따라간다.
SC제일은행은 지난해 4월부터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이란 법인명 대신 옛 제일은행의 명성을 담은 ‘SC제일’을 브랜드명으로 내세우고 있다. ‘제일’이 추가된 이후 잊고 있던 휴면예금을 찾으러 오는 노년층 고객도 있었다. 브랜드 인지도와 은행 이용률도 각각 2.7% 포인트와 4.1% 포인트 늘었다고 은행은 분석한다. 제일은행은 1987년 종각역에 들어설 때부터 종로 1번지 랜드마크 역할을 해왔다.
종각역에서 남쪽으로 광교를 넘어 을지로입구역까지. 이어 명동 일대와 남대문 한국은행 부근엔 한국의 은행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조상제한서’로 불리던 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은행 등 5대 은행이 과거 이곳에 본점을 두었다. IMF 구제금융 이후 은행업계가 재편되며 KB금융이 여의도로 옮겼고, NH농협금융이 서대문역 일대에 자리 잡긴 했어도 여전히 메인은 명동 일대다.
때문에 서울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은 은행권 네이밍 마케팅의 격전장이다. IBK기업은행은 지난해 8월 을지로입구역 이름 뒤에 ‘(IBK기업은행)’을 추가하는 계약을 따냈다. 3년간 3억원 넘는 사용료를 내며 쓴다. 기업은행은 이와 별도로 을지로와 삼일로가 교차하는 본점 앞을 ‘IBK 사거리’로 부르는 캠페인에 추가 돌입했다. 본점 건너편에 ‘IBK파이낸스타워’가 새로 들어선 것을 계기로 시작했다. 버스정류장 이름과 버스 하차 안내방송, 지하철 출구 계단의 래핑 광고도 병행한다.
KEB하나은행의 견제 또한 만만치 않다. 구 외환은행 본점과 신축 중인 옛 하나은행 본점까지 명동 터줏대감을 자처한 은행으로서 자존심이 걸린 대응이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지하철역 역명 병기보다 우리의 승강장 스크린도어 본점 안내 광고가 더 크고 효과 있다”며 “을지로입구역 하차 안내방송은 지금도 KEB하나은행이 나온다”고 강조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남대문∼명동∼종각 ‘은행 벨트’… 지하철 ‘역명 전쟁’
입력 2017-06-09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