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신학생이 성경을 읽다가 의문이 생겨 교수를 찾았다. 교수는 “나는 구약을 전공해 신약은 모르네”라고 했다. 신약학 교수를 찾아갔다. “나는 바울서신 전공일세.” 이번엔 복음서 전공 교수를 찾았다. 교수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요한복음 전공이라 공관복음은 잘 모르겠네”라고 했다. 신학생은 두 명의 교수를 더 거쳐서야 자신이 궁금해 하던 구절(마태복음 5∼7장)을 질문할 수 있었다.
신학의 각론화를 풍자한 우스갯소리지만 요즘 인문·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 등 대부분 학문 분야는 이렇게 세분화돼 있다. 그럼 만약 누군가 기독교의 정의를 묻는다면 어떻게 답할 것인가. 아가페 사랑?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구원? 교회? 단순치 않다.
한국교회 신자들은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고 주일예배를 드리긴 하지만 교회 차원에서 기독교의 정의를 세심히 가르치는 곳은 드물다. 그나마 이 분야에 관심 많은 담임목사를 만났다 치자. 교회가 소속된 교단이나 목회자의 신학적 성향에 따라 답변은 또 달라질 수 있다.
이러는 사이 일각에서는 기독교에 대한 왜곡된 주장과 악의적 비판이 멈추지 않는다. 그들은 기독교 신앙이 맹신주의를 초래한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기독교 신앙이 지성을 배제하는가. 교회는 지식과 지혜와 명철이 없는 곳인가. 안타깝게도 기독교 모독의 원인 제공자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나 교회일 때가 있다. 한국교회는 지금 외부적 비난의 강도가 높을수록 내부 성찰의 깊이를 더해야 할 시기인지도 모른다.
이 책은 이런 고민과 물음에 답할 수 있는 ‘모범 답안’으로 안성맞춤이다. 책은 기독교를 거부하고 혐오하는 이들의 왜곡과 오류를 반박하고 교정하는 변론 성격과 그리스도인이 기독교의 소양을 갖추고 그리스도 예수의 온전한 형상을 이뤄 신령한 자가 되도록 세우는 훈육의 성격을 동시에 충족한다고 밝히고 있다.
저자는 미국 칼빈신학대학원에서 역사신학으로 박사학위(PhD)를 받았고 현재 전주대 기초융합대학원 교수와 교목으로 재직 중인 한병수 교수다. 합동신학대학원대와 대한신학대학원대, 아세아연합신학대대학원, 전주대 등에서 가르친 내용을 총망라했다. 그의 이력이 암시하듯 개혁주의 신학에 입각한 ‘기독교 개론’을 설명한다.
저자는 히포의 주교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 정리된 교부들의 정통신학, 이들 신학을 계승한 중세 일부 학자들의 신학, 그리고 종교개혁 신학과 초기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의 관점을 갖는다고 명시한다.
이 관점에 따르면 기독교는 7가지 내용을 포괄한다. 하나님이 최고의 선이며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한다. 신자들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는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인간이 가감할 수 없으며 삶과 신앙에 절대적 규범이 된다. 신자들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다.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은 성자 예수의 성육신과 죽음, 부활 승천으로 속죄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와 천국 시민이 된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리스도 예수의 몸으로써 하나의 우주적 교회를 이룬다. 마지막 날 예수께서 다시 오심으로 신자는 예수의 형상과 같아질 것을 믿는다.
저자는 딱딱한 신학용어 대신 논리적·지성적 접근을 통해 차근차근 답하고 있다. 성경과 하나님의 존재, 하나님이 행하신 일, 예수 그리스도와 인간 존재, 그리고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설명한다. 책의 마지막 장은 교회가 무엇인가를 소개하고 있다. 전체 분량 중 가장 많은 양을 할애했다. 교회의 본질 회복이 시급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사회는 교회가 세상에 관심을 가지고 거기에 부응하고 세상을 세상적인 방식으로 리드해달라고 교회에 요청한다.… 그러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안중에도 없다.… 교회는 행동을 똑바로 하고 양심에 가책이 없는 정도의 가치를 추구하는 곳이 아니다.… 교회는 오직 하나님만 의존하고 목적으로 삼는다. 하나님의 은혜 외에는 그 길을 걸어갈 다른 방도가 없다. 교회는 세상과 구별된 부름을 받았다.”(293∼304쪽)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기독교 자성·악의적 비판에 대한 ‘모범 답안’
입력 2017-06-08 0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