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시대 이스라엘 정치에 제3의 정치세력이 있었다

입력 2017-06-08 00:03

구약시대 이스라엘 정치는 보통 두 세력이 대립해 온 역사로 설명한다. 왕궁과 성전을 중심으로 한 왕과 제사장 세력이 한 축이고, 광야에서 거짓 제사장과 타락한 왕을 고발하는 예언자가 다른 축이다. 이 책은 광야도 왕궁도 아닌, 성문 위에 제3의 정치세력이 있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바로 노인 혹은 장로들이다. 흥미롭고 신선한 주제다.

실수로 사람을 죽여 도망치는 이들, 지독히도 말을 안 듣고 술 마시며 방탕한 아들을 고발하고 싶은 아비, 시집갔다가 소박을 맞고 쫓겨 온 신부의 가족이 억울한 심정을 호소할 때 찾은 곳이 바로 성문이다. 성문 앞에서 자신의 사연을 호소하면, 성문 위의 노인들이 이를 듣고 시시비비를 가리고 때로는 군중의 분노를 피해 숨을 곳을 제공했다.

저자는 성문 위의 현자들을 이스라엘 공동체의 의회라고 규정하며 “구약시대에도 민주주의가 있었다”고 평가한다.

촛불집회와 대통령 탄핵에 이어 새로운 정권이 들어선 이 시점에 구약성경의 정치 이야기, 그것도 왕궁이나 성전 광야가 아닌 성문 위의 의회를 소개한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우리의 미래는 진짜 어린 새싹들에게 달린 것일까. 아니다. 우리 어르신들에게 달린 것 같다. 집안은 어른이, 교회는 장로와 원로 목사가, 나라는 은퇴한 대통령들이 잘했어야 했고 지금도 어르신으로 존경 받아야 했는데 말이다.”(64쪽)

민주주의는 어느 한쪽의 승리가 아니라 성숙한 이들의 타협을 통해 완성된다는 점을 구약성경은 증언해주고 있다.

저자는 ‘구약의 뒷골목 풍경’ ‘예언자, 나에게 말을 걸다’ 등을 통해 인문학적 상상력이 더해진 새로운 구약 읽기를 선보였다. 역사학 문학 고고학 등 다양한 학문의 성과를 모아 구약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는지 생생하게 묘사했다. 그 시대의 언어 지리 전쟁 가족과 여가생활, 당파싸움 등등을 살펴보다 보면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살았다는 걸 알게 되고, 그런 이해 위에서 성경을 다시 읽으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하신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는 말씀으로 더욱 생생하게 다가온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