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 금지된 히말라야서 의료선교사로 10년

입력 2017-06-08 00:00

내과 의사인 정성 선교사는 책 ‘통과’(좋은씨앗)의 첫 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지금 이런 일을 하면서 살 줄은 꿈에도 몰랐어.” 사람들이 살면서 과거엔 상상하지 못했던 모습으로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 내놓는 고백이다.

정 선교사는 “다른 사람들의 위와 장을 내시경으로 들여다보는 일을 직업으로 가지게 될 줄, 지방 소도시의 병원 원장으로 살다가 히말라야 고원지역에서 선교사로 살아갈 줄 전혀 몰랐다”며 담담하게 삶을 풀어낸다.

‘통과’는 외국인의 선교활동이 금지돼 있는 히말라야 고원의 한 도시에 의료선교사로 파송된 정 선교사의 사역 10년을 기록한 책이다. 그곳에서 그는 소화기내과 전문의로 현지 대학병원의 레지던트들을 가르치며 가난하고 소외된 고산족들과 넝마주이들에게 무료진료 활동을 펼쳐왔다.

이야기의 전개방식부터 독특하다. 선교사역의 에피소드들을 음식물이 위와 장을 통과해 배설물로 나오기까지의 과정으로 녹여냈다. 본문 중간엔 위, 십이지장 등 인체의 주요 소화기에 대한 설명과 삽화가 사역의 흐름에 맞게 배치돼 눈길을 끈다. 음식물이 각종 소화기관들을 굽이굽이 통과하며 우리 몸에 필요한 영양소를 공급해주듯 크리스천들이 다양한 훈련과정을 거쳐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바로 서게 됨을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살 길을 찾으리란 소망을 갖고 사흘 길을 달려 온 모녀에게 ‘아무 치료 방법이 없다’는 말 대신 “하나님이 너를 축복하신다”고 말해줬던 사연, 선교활동이 금지돼 있는 지역에서 중환자실에 실려 온 환자를 덥석 안으며 “하나님이 당신을 지켜주셨다”고 외친 사연 등 정 선교사가 들려주는 경험들엔 생생함과 따뜻함이 공존한다. 감시와 추방의 위험 속에서도 반전처럼 빛나는 현지인들의 회심 이야기는 오랜 변비 끝에 쾌변을 경험하듯 통쾌하고 감동적이다.

정 선교사가 마지막 장에서 설명하는 소화과정의 끝은 삶을 통과해 온 크리스천으로서 맞이해야 할 순간과 닮아있다. “이 냄새나는 영광의 최종 산물은 길고 긴 여행을 통과한 진정한 승리자다. 나는 안다. 이것이 나의 인생이요, 주님 앞에서의 나의 영광이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