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봉화를 지나 울진으로 접어들면 사방이 소나무숲으로 변한다. 원래 울진군 서면이었던 ‘금강송면’이다. 금강송은 색이 붉어 적송(赤松), 늘씬하게 뻗어 미인송(美人松), 봉화의 춘양역에서 운반돼 춘양목(春陽木), 속살이 특유의 정결한 황금빛을 띠고 있어 황장목(黃腸木)으로도 불린다. 붉은 빛 표피는 시간이 흐를수록 딱딱해지며 밑둥치부터 회색으로 변하고, 육각형의 거북 등딱지 모양으로 변한다.
금강송면에 금강소나무숲길이 있다. 산림청이 국민세금으로 조성한 1호 숲길이다. 금강소나무와 희귀 수종 등 다양한 동식물이 자생하고 있으며, 미래세대를 위해 후계림을 조성하고 있는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이다. 우리나라 최대의 금강송 군락지답게 2274㏊에 이르는 광활한 면적에 수령 30∼500년 된 금강송 160여만 그루가 하늘을 찌를 듯 빽빽하게 들어서 장관을 이루고 있다. 사계절 인체에 유익한 물질인 피톤치드가 쏟아진다.
숲길은 조선시대 숙종(1674∼1720)때부터 관리한 소광리 금강소나무 군락지와 십이령 옛길을 두루 품는다. 숙종은 궁궐의 기둥이나 왕실의 관으로 사용되는 금강송을 보존하기 위해 황장봉계 표석을 세우고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했다. 당시 소나무를 베면 곤장 100대의 중형이 내려졌다. 그 흔적이 소광천과 만나는 대광천 계곡에 황장봉표로 새겨져 있다.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 장군터 인근에 황장봉계 표석이 있다. ‘황장봉산의 경계 지명은 생달현, 안일왕산, 대리, 당성의 4 곳이며 산지기는 명길이다’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경북 해안과 내륙이 연결되는 십이령 옛길은 조선시대 보부상들의 애환이 서린 ‘동해안의 차마고도’다. 산더미 같은 지게 짐을 짊어지고 열두 고개를 매일 넘어 다니던 사람들이다. 바지게꾼으로 불리는 그들은 울진에서 해산물을 잔뜩 지고 130리 산길을 걸었다. 그리고 봉화에서 농산물로 바꿔 다시 울진으로 돌아오는 고된 여로를 숙명처럼 짊어지고 살았다.
금강소나무숲길은 총 5개 구간이 있다. 1구간은 두천1리에서 시작해 소광2리까지 온전하게 4개의 십이령 고개를 넘는 길이다. 3구간은 십이령 옛길 중 2개의 고개를 넘고, 우리나라 최대의 금강소나무 군락지를 돌아본다. 금강송군락지와 십이령 옛길을 한꺼번에 보고 느끼기 위해 3구간을 걸었다. 옛 보부상의 애환을 느끼고 수백년 된 금강소나무의 피톤치드로 지친 몸과 마음에 건강과 활력을 불어넣는 에코힐링을 즐기기에 최적지이다. 올해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공동으로 선정하는 한국을 대표하는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됐다.
3구간 출발점은 소광2리 금강송펜션 앞이다. 금강송펜션은 폐교된 소광초등학교 교사를 리모델링한 숙소다. 소광초등학교는 1947년 3월에 개교해 1995년 3월에 폐교됐다. 오지마을의 풍요로운 자연에 많은 사람들이 기대 살면서 학생이 많을 때는 무려 103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오전 9시. 주차장으로 사용하는 옛 운동장에서 가이드인 숲해설사가 탐방객들에게 3구간을 소개하고 주의사항을 알려준다. 주차장을 나와 소광2리 마을회관 앞을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탐방이 시작된다. 민가 몇 채를 지나면 ‘두천1리’를 알리는 작은 안내판이 길을 안내한다. 저진터재 오름길이 시작된다.
호젓한 길섶에는 하얀색으로 변신한 잎을 지닌 개다래와 찔레꽃이 가득하다. 달콤한 찔레 향기에 취해 걸으면 무덤을 지나 저진터재 고갯마루에 올라선다. 저진터재는 울진에 속한 십이령 4개 고개 중 하나로, 땅에 물기가 많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같은 고개를 반대편에서 넘어갈 때는 ‘너불한재’라고 불렀다. 바다쪽에서 육지쪽으로 오르는 길이 더 힘들어서 너부러져 그렇게 불린 듯하다. 옛날 보부상들은 산적이나 산짐승의 공격에 대비해 30∼100명씩 무리지어 넘었다고 한다.
고갯마루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땀을 식혀준다. 고개를 내려오면 화전민 집터가 나온다. 산 속에서 고단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짠해진다. 이어 너삼밭재다. 너삼은 고삼을 말한다. 고개 일대에 고삼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한방에서 고삼 뿌리를 달여 약재로 쓴다.
너삼밭재에서 내려오는 숲길은 그윽하다. 단풍나무를 비롯한 활엽수들이 우거져 시원한 그늘을 드리운다. 길을 내려서 임도를 만나는 지점이 너삼밭이다. 여기서부터 대광천을 거슬러 올라 금강소나무 군락지로 들어선다.
임도에서 징검다리를 건너면 오솔길이 시작된다. 200m쯤 가면 숲 속의 작은 초소를 만난다. 두천리에서 시작한 1구간과 3구간이 합류하는 지점이다. 오솔길은 대광천을 수시로 건너고 임도와 숨바꼭질하며 이어진다. 도열한 팔등신 미녀처럼 쭉쭉 솟구친 금강소나무들 사이를 걷다보면 솔향에 마음까지 젖어들어 저절로 힐링이 된다.
논깨쉼터를 지나면 대광천 건너편에 최근 개장한 ‘산림생태관리센터’가 눈에 들어온다. 이어 금강소나무와 낙엽송 그윽한 숲길이 한동안 이어진다. 나무다리를 건너면 점심 장소에 닿는다. 주민들이 운영하는 밥차가 와서 기다리고 있다. 다양한 산나물 반찬과 밥을 받아와 계곡에 발을 담그고 먹으면 꿀맛이다.
금강소나무 군락지로 200m쯤 가면 ‘소광리 금강소나무 생태경영림에 오심을 환영합니다’라는 커다란 플래카드가 반긴다. 그 앞에 안도현의 ‘울진 금강송을 노래함’ 시비와 안내판들이 서 있다. 여기서 좀 더 오르면 우람한 소나무 한 그루와 관리소를 만난다. 이 나무가 금강소나무숲의 상징목인 ‘오백년소나무’다. 수령 530년이 넘었다.
조선 성종 때 싹이 터 임진왜란, 일제강점기, 6·25전쟁 등 이 땅의 풍파를 모두 지켜본 소나무다. 키가 23m에 가슴높이 지름이 96㎝에 이른다. 성인 두 명이 팔 벌려 껴안아도 손이 닿지 않을 정도로 굵다. 피사의 사탑처럼 오른쪽으로 살짝 기운 채 시원스레 뻗은 몸매와 틀어진 가지에 기품과 품격이 넘친다. 나무 높은 곳 가지에 갈참나무가 자라고 있다. 새가 도토리를 숨겨 놓았던 게 싹을 틔운 것이다.
관리소 안에는 금강소나무와 일반 소나무를 비교할 수 있는 샘플이 있다. 군락지에서 더 들어가면 수령 500년이 넘은 ‘못난이 소나무’와 수령 350년의 ‘미인송’ 등을 만날 수 있지만 현재는 일반 탐방객 출입이 제한돼 아쉬움을 남겼다.
이제 왔던 길을 되밟아 돌아간다. 돌아가면서 보는 풍경이 새롭다. 숲길에서 보이지 않던 ‘미남송’도 멀리 산 위에서 손짓한다. 너삼밭재에서는 왔던 길을 오롯이 되밟아간다. 출발 6시간 만에 주차장에 도착했다. 몸은 다소 고단했지만 초록 짙은 숲속에서 ‘피톤치드 샤워’로 마음이 힐링되는 시간이었다.
■여행메모
마을 운영 '밥차'의 친환경 시골밥상, 구간별 하루 80명 제한… 예약 필수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중앙고속도로 영주나들목에서 빠져 영주·봉화방면 36번 국도를 따라 가다 삼근교차로에서 소광리 방면으로 우회전한 뒤 광천교를 건너 다시 우회전한다. 하늘채펜션을 지나 갈림길에서 왼쪽 길을 택하면 금강송펜션에 닿는다. 펜션 앞 무료 주차장을 이용하면 된다.
대중교통의 경우 울진 읍내에서 금강송펜션까지 1일 2회 버스가 운행된다. 아침에 금강송펜션 가는 버스는 울진시외버스터미널에서 오전 8시5분 출발하면 50분 정도 소요된다. 요금은 1500원.
주차장 옆에는 마을주민들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금강송펜션(7만∼14만원) 외에 십이령주막(054-782-9201)이 있다. 십이령주막에서는 산채비빔밥(6000원)과 파전, 두부 등으로 요기를 할 수 있다. 점심 도시락(1인당 6000원)도 제공된다. 탐방 인원이 20명을 넘을 경우 따끈따끈한 밥과 반찬, 국까지 구비된 '밥차' 트럭이 정해진 식사 장소까지 운행된다.
숲길은 예약탐방으로 운영된다. 인터넷 홈페이지(www.uljintrail.or.kr)에서 예약할 수 있다. 구간별로 하루 80명만 허용된다. 매주 화요일은 숲길 휴식의 날이어서 탐방이 없다. 구간별로 출발지가 다르다. 3구간은 왕복 16.3㎞로, 6시간가량 소요된다.
울진=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