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고용 도넘은 대기업… 압박 카드 꺼내든 정부
입력 2017-06-06 18:14 수정 2017-06-06 21:28
대기업이 정규직 대신 비정규직을 고용하고, 여기에 더해 협력업체라는 명분으로 자사 소속이 아닌 타사 소속 근로자를 간접고용하는 이유로는 두 가지가 꼽힌다. 정규직보다 임금을 적게 주기 때문에 인건비를 아낄 수 있다는 게 첫째 이유다. 두 번째는 책임소재가 발생했을 때 책임 회피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5월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발생한 스크린도어 사망 사고도 이러한 ‘위험의 외주화’가 낳은 인재다. 협력업체라는 명분으로 간접고용을 일삼다 서울고등법원에서 불법파견 판결을 받은 대기업도 있다.
조선·건설업 간접고용 비율 높아
6일 국민일보가 입수한 고용노동부의 고용형태공시제 개선 방안 보고서를 보면 비정규직 비중이 높은 상위 30대 기업의 비정규직 근로자 비중은 매년 늘고 있는 추세다. 2014년 평균 50.3%였던 비정규직 비중은 2015년 52.7%로 늘더니 지난해에 54.3%까지 증가했다. 문제는 이러한 비정규직 중 80% 이상이 자사 소속도 아닌 타사 소속이라는 점이다. 특히 건설사나 조선업이 두드러진다. 건설업체인 현대산업개발의 경우 지난해 기준 전체 고용자 1만1534명 가운데 비정규직은 1만512명으로 전체의 91.1%를 차지했다. 이 비정규직 중 대부분인 9587명은 현대산업개발 소속조차 아닌 협력업체 소속이다. 정부의 추가 지원으로 파산을 면한 대우조선해양도 마찬가지다. 4만8250명의 근로자 가운데 3만5654명(73.9%)이 비정규직으로 분류되는데, 150여명을 제외한 3만5000여명이 엄밀히 말해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 소속이다. 이외 이마트나 롯데쇼핑 등 리테일 분야도 비정규직 및 간접고용이 만연한 분야로 분류된다.
비정규직·간접고용 경계 모호
정부가 공공부문에 이어 민간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까지 종용하는 것은 간접고용이 만연해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다만 현 시점에서 ‘비정규직 제로’를 밀어붙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게 대다수 노동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비정규직의 경계가 모호해서다. 한국비정규직노동센터(노동계), 정부,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집계한 전체 근로자 중 비정규직 근로자 비중은 각각 44.3%, 32.8%, 14.9%로 격차가 크다.
특히 간접고용 부문은 노사 간 해석을 가장 첨예하게 가르고 있다. 대기업 입장에서는 간접고용이지만 하청업체에서는 직접고용한 정규직일 수 있다. 때문에 원·하청 간 심한 격차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경비나 청소용역 등 담당 업무가 완전히 분리되는 직무형 간접고용은 직접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대신 적정 임금이나 고용 안정을 보장하는 방안 등이 대안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박지순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영역에 대한 정의도 모호하고, 청소나 미화 등 전문화된 영역의 용역·도급까지 정규직화한다는 건 무리가 있는 만큼 세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비정규직 정의 자체를 다시 수정하려면 노사정 합의가 필요하고, 관련 논의도 필요할 것”이라며 “다만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대상을 어디까지로 볼지는 실태조사와 일자리위원회 내부 논의 등을 통해 기준을 마련하고 로드맵을 만들고자 한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조민영 기자 sman321@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