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당이 ‘협치 딜레마’에 빠졌다. 여당과 자유한국당 사이에서 ‘캐스팅보터’ 역할을 강조하지만 결국에는 문재인정부에 협력하게 된다는 딜레마다. 정부·여당에 협조하되 견제와 감시라는 야당 역할에 소홀하지 않겠다던 당초 목표가 흐릿해진 모양새다. 당 안팎에선 캐스팅보터로서 존재감은커녕 ‘문재인정부 도우미’에 그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당 지도부인 한 의원은 6일 “우리가 한국당과 같은 길을 갈 수는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국민의당이 보수야당과 차별화된 스탠스를 취하려다보니 결과적으로 문재인정부에 협조하는 것으로 비친다는 취지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낙연 국무총리 인준이었다. 국민의당은 이 총리 후보자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이 불투명했던 상황에서 “인사 배제 원칙이 깨진 데 대한 청와대 입장 표명이 있어야 한다”고 내부 입장을 정리했다. 그런데 한국당이 결사반대 주장을 고집하자 국민의당은 결국 총리 인준에 대승적으로 협조했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에 대해서도 “인준에 협조하자”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일부 중진 의원은 “광주 분위기는 김 후보자의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버스 운전기사에 대한 사형 판결을 문제 삼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문재인정부의 호남 출신 중용이 당내 강경파 목소리를 누그러뜨리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지역구 의원 대부분이 호남 출신인 국민의당에는 전북 고창 출신인 김 후보자와 여러 인연으로 얽혀 있는 의원이 적지 않다. 국민의당이 부적격 입장을 밝혔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서도 “도덕적 흠결은 있지만 능력은 인정해줘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국민의당이 문재인정부에 각을 세우는 부분은 ‘일자리 추경’ 정도다. 정부조직 개편안의 경우 국민의당은 “야당과 사전협의 한 번 없었다”고 날을 세웠지만 스탠스를 바꿀 가능성이 크다. 당 지도부에선 “정부 조직을 크게 흔드는 게 아닌 만큼 통과시켜주는 게 바람직하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협력 일변도로 흐르는 당 기조에 반발하는 조짐도 있다. 이언주 원내수석부대표는 기자들과의 점심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에서 얻은 41%가 아닌 60%에 가까운 국민을 겨냥하는 것으로 당의 기조를 잡아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재인정부를 극찬한 박지원 전 대표를 향해선 “용비어천가를 부르며 ‘나를 좀 봐 달라’고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오라고 하지 않으니 당을 팔아서라도 가려는 것이냐”고까지 했다. 다른 당직자는 “야당 정체성을 잃어버렸으니 민주당 2중대라는 말을 듣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후 원내부대표단과 청문위원 등이 참석한 인사청문회 대책회의에서도 검증 수위를 더욱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일각에선 “당의 입장을 처음부터 확정적으로 밝히지 말고 여지를 남기는 게 그나마 나을 것”이라는 자조 섞인 말까지 나왔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
국민의당 협치 딜레마… 협조하면 ‘민주당 2중대’, 견제하면 ‘제2 한국당’
입력 2017-06-07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