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수 700쪽 서면답변] 그도 즉답 미룬 한국사회 ‘난제’ 있었다

입력 2017-06-07 05:01

김이수(64·사법연수원 9기)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최근 국회 인사청문특별위원회에 제출한 답변에는 그가 헌법재판관으로서 절감한 이 사회의 갈등 면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헌법재판관으로서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한편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역할을 감당해 왔다고 자신했다. 그는 “헌법재판관으로서 담당한 모든 사건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아쉬움이 남는 결정은 없다”고도 했다.

김 후보자는 수년간 ‘9인의 현자’로서 대한민국의 민주적 기본질서와 법치주의를 보호하는 역할을 맡아왔지만 모든 갈등과 사회적 쟁점에 명확한 입장을 피력할 수 있었던 건 아니다. 서면답변의 한편에는 그가 여전히 결정하지 못한 난제들이 드러난다. 난제의 대부분은 도대체 정답이 없는 철학적인 이슈들이다. 다만 곧 헌재가 어떤 형태로든 설명과 결론을 제시해야 할 논점들도 포함돼 있다.

사회적 합의 필요한 난제

김 후보자는 한국사회에서 표현의 자유 신장을 위한 개선점,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 보장을 위해 필요한 노력을 묻는 질문에 “표현의 자유 보장을 위한 입법적 조치는 민주적 정당성을 가진 입법부에서 대화와 토론을 통해 정해질 문제”라며 즉답을 피했다. 다만 그는 “특정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공적인 영역에서 우대받거나 배제되는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헌재나 법원 등에서 엄격한 심사를 할 필요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당시 “민주주의란 바다와 같다”는 지론을 편 것으로 유명하다. 이런 김 후보자는 더 다양한 견해를 수용할 수 있는 포용력이 이 사회에 필요하다고 보는 편이다. 김 후보자는 최근 국정농단 사태의 한 축으로 논란이 된 블랙리스트를 두고서도 “민주주의는 언제든지 소수의 의견이 다수가 될 수도 있다는 인식에 기초를 둬야 더욱 발전한다”고 언급했다. 그는 형법상 모욕의 범위가 지나치게 광범위해 정치적·학술적 표현 행위를 위축시킨다는 우려를 보인 적도 있다.

김 후보자는 특별사면제도에 일단 유보적 입장을 보였다. 대통령이 행사하는 특별사면권은 거의 매년 유전무죄(有錢無罪) 논란을 일으켜 왔고, 법조계 내부에서도 비판 목소리가 큰 상황이다. 특별사면 제한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 그는 “사면권은 헌법에서 정한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며 “자세한 언급은 삼권분립의 원칙에 비춰 적절하지 않은 면이 있다”고 즉답을 피했다. 다만 “형사재판의 효력을 배제하는 사면은 보충적·예외적으로 활용되면서 사법부의 역할과 조화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김조광수 영화감독의 공개 동성결혼식 등으로 논란이 계속되는 동성결혼 문제도 김 후보자는 선명한 찬성·반대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헌법이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동성결혼은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그는 이 주제에 대해서도 국회의 논의와 토론,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헌재가 답할 것이다

김 후보자가 견해를 드러내지 않은 난제들 중에는 헌재가 헌법 합치 여부 등을 심리 중인 사건과 연관된 사안도 있었다. 청문위원들이 많이 물었지만 답변을 듣지 못한 대표적인 것은 군대 내 동성애 처벌 관련 이슈였다. 김 후보자는 “현행 군형법 제92조의6(추행)에 대해서는 위헌제청사건이 접수돼 전원재판부에서 심리 중”이라며 “개인적 의견을 밝히기 곤란하다”고 했다. 다만 그는 과거 군형법상 ‘그 밖의 추행’이 불명확하게 규정된 점을 지적한 바 있다.

김 후보자가 답변할 수 없는 질문 가운데에는 박근혜정부의 개성공단 폐쇄가 헌법에 합치하는지, 일방적인 폐쇄에 따른 피해의 구제책은 무엇인지에 대한 것들도 있었다. 김 후보자는 “개성공단의 폐쇄에 따른 문제들을 다투는 헌법소원심판이 제기된 상태”라며 구체적 견해를 제시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는 기업가의 피해가 당사자의 과오 때문이라기보다는 남북 간 대립이라는 시대적 상황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최대 국정 현안으로 꼽히는 미국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와 관련해서도 국회의 동의 필요성 등이 질문됐지만 김 후보자는 말을 아꼈다. 사드 문제도 헌법소원 사건이 접수돼 헌재가 심리 중이다.

2015년 12월 대한민국과 일본 정부 간 이뤄진 위안부 문제 합의에 대해서도 김 후보자는 본인의 평가를 섣불리 말하지 않았다. 그는 “피해자분들과 그 자녀, 상속인들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해 심리가 진행 중”이라며 합의의 성격과 의미를 앞으로 면밀히 검토하겠다고만 밝혔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