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스페셜] 인사청문회, 청문회장에 서다… 신상털기 검증 언제까지

입력 2017-06-07 05:02

문재인정부 출범 직후 시작된 올해 국회 인사청문 정국에서도 후보자의 도덕성 검증을 놓고 ‘고문청문회’ 대 ‘국민의 알권리’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9년 만의 정권교체로 여야가 서로 공수 위치만 바뀌었을 뿐이다. 인사청문회 제도 도입 이후 반복된 해묵은 신경전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드러났다. 이에 따라 미국처럼 고위공직자 후보 지명 전 철저한 사전 검증 의무화와 신상 관련 청문회 비공개 원칙 마련 등의 제도 개선 요구가 정치권에서 점차 거세지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인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일 개최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청문회는 후보자의 소신과 철학, 정책을 듣고 질문하는 자리인데, 현재의 청문회는 고문에 가깝다”며 “(고위공직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아들 청문회, 딸 청문회, 장인·장모 청문회로 변질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세 차례 열린 인사청문회에서도 후보자의 ‘밝히고 싶지 않은 과거’가 속속 드러났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아들의 병역면탈 논란을 해명하면서 “아들이 뇌종양 수술을 받았다”고 공개했다. 김상조 후보자는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거주 이유를 추궁받자 “개인적 사정이라 말씀드리지 않으려 했다”면서 배우자의 대장암 병력을 공개했다. 후보자의 개인 및 가족 신상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은 보수정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완구 전 국무총리 차남은 언론 앞에서 공개 신체검사를 받아야 했고,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모친의 건강보험공단 의료비 지급 내역 등을 공개해야 했다.

‘검증’이라는 명분 아래 후보자 본인은 물론 가족의 신상정보까지 무차별 공개되는 일이 반복되자 이런 청문회 관행이 후보자의 직무수행 능력 평가와는 무관하며,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현행 인사청문회법 등 관계법령에 따르면 인사청문 대상자는 국회에 임명동의안 또는 인사청문요청안이 제출될 때 본인은 물론 가족의 병역사항, 재산 및 납세 관련 사항을 제출해야 한다. 가족의 경우 독립 생계유지가 증명될 때는 재산 사항을 신고하지 않아도 되지만 인사청문특별위원회나 해당 상임위원회 위원들이 인사청문회법에 근거해 자료를 요청하면 거부하기 쉽지 않다. 의혹이 있거나 의혹을 감추기 위해 자료 제출을 거부하는 것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야권의 무차별적 자료 요청은 인사청문회를 여야의 기싸움 장소로 여기는 정치 문화와 무관치 않다. 야당은 대통령이 임명한 후보자를 탈락시키는 것을 승리로, 여당은 야당의 거센 공세를 막아내는 것을 승리로 여기기 때문이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달 28일 야당에 이낙연 총리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을 요구하며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당시 인사청문회에 피해의식을 갖게 된 민주당이 이명박·박근혜정부에서 과하게 공세를 펼친 것을 살펴보게 된다”며 자성하기도 했다.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무차별적으로 이뤄지는 ‘신상털기’에 대한 문제 제기는 지속적으로 있어 왔다. 여야는 19대 국회에서 42건의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도덕성 검증 청문회를 비공개로 진행하자는 내용에서부터 인사청문회 기간 연장, 신상 자료 제출 강화 등의 내용이었지만 19대 국회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다. 20대 국회에 들어서도 13건의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사전검증 절차 강화와 사전검증 자료의 임명동의안 및 인사청문요청안 부속서류 첨부 의무화 등이 주 내용이다.

일각에선 미국처럼 고위공직자 인선 발표 전 철저한 사전검증을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은 1787년 헌법제정회의에서 의회의 고위공직자 인준권을 규정하며 세계에서 가장 먼저 인사청문제도를 도입했다. 미국은 대통령이나 대통령 당선인이 고위공직자 후보자를 선정하면 백악관 인사국과 연방수사국(FBI), 국세청, 공직자윤리위원회 등이 달라붙어 검증작업에 돌입한다. 후보자 개인과 가족 배경, 세금 납부, 전과 및 소송 진행 현황, 직업·교육 배경은 물론 교통범칙금 납부 등 경범죄 위반 사항까지 230여개 항목을 철저히 조사한다. 미국 대통령은 사전검증 통과 후에도 각 정당의 지도자들과 협의를 거친 후에야 공식 후보자를 지명하고 상원에 인준동의안을 제출한다.

윤관석 민주당 의원은 6일 “미국식 청문제도처럼 신상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사전에 검증하고, 청문회에서는 국민 앞에서 정책검증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전 검증이 강화되면 후보자의 신상 관련 청문회는 비공개로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점차 힘을 얻고 있다.

윤한홍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 2월 “유능한 인재가 사생활 노출 및 과도한 신상털기에 따른 예상치 못한 피해를 우려해 공직을 기피하는 현상을 낳고 있다”며 인사청문회를 윤리성 검증 인사청문회와 업무능력 검증 인사청문회로 이원화하고, 윤리성 청문회를 비공개로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개정안을 발의했다. 실제 미국은 1993년부터 연방대법관 인사청문회에서 후보자 개인의 신상 검증은 비공개로 진행하고 있다.

문재인정부에서 반복된 이번 인사청문 정국은 그 배경이 다르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가 오히려 후보자의 도덕성 논란을 확산시킨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대선에서 ‘적폐청산’ 기조를 대선 슬로건으로 내세우면서 ‘병역 면탈’ ‘위장전입’ ‘세금 탈루’ ‘부동산 투기’ ‘논문표절’ 전력자의 고위공직 원천 배제를 공약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직접 인선을 발표한 이낙연 총리와 김상조 후보자는 위장전입 사실을 스스로 인정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의 위장전입 사실은 청와대가 인선 발표와 함께 공개해 ‘공약 후퇴’ 논란을 자초했다. 청와대와 여당, 인수위 역할을 맡은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구체적인 인사청문 기준을 마련하고 있지만 야당은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첫 국회 인사청문회는 김대중정부 시절인 2000년 6월 이한동 당시 국무총리 후보자를 상대로 한 청문회였다. 이후 국회 인사청문 대상은 계속 확대됐다. 노무현정부 출범 직전인 2003년 1월에는 국가정보원장과 검찰총장, 국세청장, 경찰청장 등 이른바 ‘4대 권력기관장’을 인사청문 대상에 포함시키는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이어 2005년에는 각 부처 장관 등 국무위원과 헌법재판소 재판관, 중앙선거관리위원장 등이, 2012년 2월에는 공정거래위원장, 금융위원장, 국가인권위원장, 한국은행 총재 등이 국회 인사청문 대상으로 추가됐다.

글=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