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현지시간) 카리브해의 빈국 아이티 북부 카라콜.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자동차로 5시간쯤 가야 하는 거리에 위치한 도시에는 궁색한 청년들이 넘쳐났다. 도로는 무질서했고 쓰레기가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져 있었다. 자동차들에선 매연이 뿜어져 나왔고 엔진 소음은 시끄러웠다. 어디 하나 정리된 곳이 없을 정도로 어수선했다.
카라콜 도심에서 매캐한 먼지바람을 가르며 30여분을 달려가자 푸른 초원이 나왔다. 반듯하고 깔끔해 보이는 건물 여러 채가 보였다. ‘아이티 직업학교.’ 한국교회가 지난해 3월10일 이곳에 세운 희망의 산실이다. 2010년 1월 발생한 대지진으로 국토 대부분이 초토화됐던 이 나라를 위해서 말이다.
절망의 땅에서 싹 튼 희망
이 직업학교는 한국교회봉사단(한교봉·대표회장 김삼환 목사)·월드디아코니아(이사장 오정현 목사)가 연합해 지었다. 한교봉은 아이티 대지진 피해 복구를 위해 국민일보 등을 통해 한국교회 성도들로부터 37억원의 기금을 모았다. 여기에 대형 교회와 기독기업 등의 후원금 등을 합해 45억원을 아이티에 지원했다. 이 중 25억원이 이 학교에 투입됐다.
1만5000여㎡의 땅에 강의실과 예배실, 숙소 등을 건립한 지 벌써 1년 3개월이 지났다. 학교는 전문인력 양성기관이자 지역 커뮤니티센터로, 이곳 청년들에겐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의 장소로 여겨졌다.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대학에 가질 못했다는 빈센트 제슨 프리츠(32)씨는 “이 학교에서 공부를 하게 된 게 내 인생의 유일한 기회”라며 “외교관이 되는 게 꿈인데 하나님이 꿈을 이뤄주시기를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어를 더 잘 배우기 위해 입학했다는 조지 스테파니(21)씨 역시 “좋은 환경에서 인내심과 열정 넘치는 교사들에게 교육을 받아 실력이 크게 향상되고 있다”고 활짝 웃었다.
고등학교 졸업 이상 학력자와 공무원 등 직업인 가운데 선발된 재학생은 300여명. 교사와 현지 강사 등 10여명으로부터 영어 스페인어 컴퓨터 등 3개 과목을 4개월 3학기 과정으로 배운다. 졸업생에겐 컴퓨터 국가기능시험 응시 자격이 주어진다. 첫 졸업생 15명을 배출한 컴퓨터과는 학교 인근 한국계 의류제조회사 세아상역에 2명을 취업시켰다. 세아상역은 현지인 1만2000여명을 고용한 기업으로 직업학교와 산학협력 관계를 유지하는 대표적 우량기업이다.
신앙 속에서 무르익는 희망
이 학교 초대 교장인 이원상 목사는 가족과 떨어져 지내면서도 선교 사명을 늘 가슴에 품고 기도한다. 인접국가인 도미니카 한인교회를 끝으로 17여년의 선교사역을 마친 뒤 이곳에 부임, 교육봉사를 마지막 소명으로 삼고 있다.
“개교 1년여 만에 가장 주목받는 학교로 성장했죠. 앞으로 지역 특성을 살리고 실생활에 유용한 농업·식품가공 과정도 개설할 겁니다. 이미 시험작물 재배에 들어갔습니다.”
이 목사의 첫 마디는 역시 희망이었다. 아쉬움도 있다. 그는 “교통수단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오토바이와 낡은 승용차를 수리할 차량정비과도 만들고 싶지만 워낙 실습 기자재 비용이 많이 들어 엄두를 못내고 있다”며 말했다.
학교는 양질의 강사 확보가 어려운 열악한 여건 속에 재능기부 형태로 단기간 함께 생활하며 다양한 기술을 전수해 줄 자원봉사자들도 기다리고 있다. 한국교회 성도들의 관심도 바라고 있다. 학과가 신설되고 강사 숙소가 확장되면 직업학교는 개교 1년 만에 명실상부한 아이티 최고의 직업학교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교봉은 이 학교가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앞으로 2년간 운영비 2억원을 더 지원할 예정이다. 천영철 사무총장은 “현지에서 확인해보니 학교가 아주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어 한국교회 연합사업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히고 있다”며 “앞으로 제2, 제3 연합사업의 동력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했다.
카라콜(아이티)=글·사진 황병설 기자bshwang@kmib.co.kr
[르포] 절망의 땅 아이티 청년들 ‘희망의 산실’로
입력 2017-06-06 00:00 수정 2017-06-06 17:37